파한서 3장: 주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왕 다윗. 파한교의 시선으로 바라본 다윗은 맹목적인 신앙인이 아닌, 무자비한 신의 비위를 맞추며 끊임없이 서사를 만들어낸 궁극의 적응자이자 생존자입니다.
3. 주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신실하신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주님의 총애를 받을 수가 있을까요? 율법에 충실한 것은 주님께 징벌을 당하지 않게 될 뿐, 단지 그것 만으로는 주님의 온전한 사랑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사무엘기에는 주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인물인 다윗이 등장합니다. 다윗이 주님을 즐겁게 해드렸던 삶을 보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단서를 미약하게나마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사울의 즉위와 몰락
모세부터 여호수아 시대까지 한바탕 피칠갑을 즐기던 주님 께서는 드디어 히브리인의 정착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주변 민족들은 끊임없이 소소한 병력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혔고 그때마다 야호 님께서는 영웅 드보라, 삼손, 입다, 기드온 같은 사사를 생산하셨고 적을 방어하면서 재미를 느껴오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들이 사사 사무엘을 통해서 주님께 왕을 요구했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처음에 시큰둥하셨습니다. 당신과 인간들 사이에 왕이 끼어들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릴 수가 있을까, 그리고 왕 노릇 할 만한 인간이 있을까라는 두 가지 문제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주님께서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그나마 쓸만했던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사울이 딱히 주님의 마음에 맞지는 않았기에 주님께서는 제대로 된 왕을 한번 만들어보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사울이 기름 부음을 받고 즉위한지 9년 쯤 지났을 무렵 야호 님께서는 드디어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다윗을 이새의 아내에게 잉태시키셨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왕위를 받을때까지만 왕위를 지키고 있으면 될 뿐이었습니다. 다만 다윗이 왕위를 이어받기 위해서는 인간들이 납득할만한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야호 님께서는 사울이 지키기 어려운 여러가지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사울이 이를 지키지 못하자 사무엘을 시켜서 사울의 폐위를 선언하게 하셨습니다.
사울은 신앙심을 잃지 않고 회개하여 끊임없이 주님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에게 왕위를 이을 명분을 주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그의 회개와 참회를 끝까지 외면하셨습니다. 사울이 딱히 더이상 잘못을 저지르지 않자 야호 님께서는 모세 시절에 파라오에게 그랬듯 악령을 보내서 사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습니다. 악령에 시달린 사울은 각종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사울이 저지른 악행이 쌓일수록 백성들의 눈에는 다윗이 왕위를 이을 명분은 더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선량한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사울을 차마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야호는 블레셋군을 보내서 사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다윗이 왕위 계승을 거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다윗이 존경했던, 왕위 계승권 1순위인 고결한 요나단 왕자도 함께 죽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사건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요? 주님께서 한 번 결심하신 마음을 되돌리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을 아무리 간절히 원하더라도 주님께서 그것을 원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처분에 토를 달지 말고 복종해야 합니다. 사울은 그렇지 못했기에 흠결없는 아들과 함께 비참한 죽음을 당했던 것입니다.
2) 베레스 웃사
시간 벌기용 임시 왕이었던 저주받은 사울이 죽자, 다윗은 곧 외적을 물리치고 소소한 내전을 거쳐서 사울 가문으로부터 왕위를 넘겨받았습니다. 한숨 돌린 다윗은 3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야호의 거처인 언약궤를 다윗 성에서 모시러 바알라에 갔습니다. 그는 바알라 사람 아비나답의 집에서 20년간 보관 중이던 언약궤를 수레에 실어서 이동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수레를 끌던 소들이 날뛰었고 수레 위의 언약궤가 바닥에 떨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그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후훗. 떨어뜨리기만 해봐라. 그룹(케루빔)들아. 얼른 불칼 들고 이리 모이거라. 에덴동산은 잠시 비워도 좋다. 곧 파티타임이야. 근데 내 불벼락을 어디다 뒀더라? 전염병을 써볼까?”
야호 님께서는 언약궤의 속죄판을 열어본 죄를 이유로 벳세메스에서 5만 70명을 쳐 죽이셨던 일을 떠올리시며 당신의 무기고를 뒤적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언약궤를 손으로 잡아서 낙하를 막는 불경을 저질렀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오랜만의 흥겨운 칼춤을 방해한 웃사가 미우셨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그를 치셨습니다. 웃사는 터져서 죽었고 다윗은 성을 냈습니다.
다윗의 분노는 감히 언약궤를 손으로 만져서 죽음을 자초한 웃사에 대한 화인지, 아니면 겨우 그런 일로 사람을 죽인 야호 님을 향한 분노였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다윗은 그 자리를 ‘베레스 웃사’라고 이름을 지어서 웃사의 죽음을 사람들에게 기억하게 했습니다. ‘베레스 웃사’라는 명칭이 감히 불경을 저지른 웃사를 조리돌림하기 위한 목적인지 야호 님을 원망하며 웃사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한 것인지는 다윗 자신과 야호 님께서만이 아실 뿐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지 않기로 하고 근처에 사는 오벳에돔이라는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감히 피조물이 창조주를 원망하며 그분의 성물을 남의 집에 유기하다니요. 이는 보통의 인간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불경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다윗의 특별함이었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어쭈, 이자식 봐라? 지금 나 한 방 먹은 건가?’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역시 주님의 최고 걸작품답게 다윗은 예측하기 어려운 재미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자신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할 다윗을 가까이에 두고 싶으셨습니다. 다윗을 다시 유인하기 위해서 야호 님께서는 언약궤를 보관하던 오벳에돔에게 축복을 내리셨습니다. 언약궤의 축복에 대한 소식을 들은 다윗은 마음을 고쳐 3개월 만에 언약궤를 자신의 성으로 옮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번에는 수레를 쓰지 않고 사람들이 직접 어깨에 메고 날라서 화를 피했습니다. 언약궤가 자신의 성 안에 들어오자 다윗은 옷을 반쯤 벗고 기괴한 춤을 추며 기뻐했습니다. 그는 웃사의 죽음을 이유로 주님의 집을 유기하듯 남에게 위탁했었습니다. 그런 불경함에 대한 참회라는 명목으로, 왕의 체면마저 내던진 채 벌거벗고 엎드려 바치는 기괴한 광대의 춤이었습니다. 그 우스꽝스런 모습은 주님의 마음에 맞았습니다. 다윗의 아내 미갈은 혹여 주님의 징벌이라도 있을까 하며 조마조마해 하는 남편의 속도 모르고 그 모습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이는 다윗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고 미갈은 다시는 다윗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이 살기 위해 왕의 체면마저 버리고 광대처럼 춤추었던 이 처절한 생존 본능을 기억하십시오. 주님 앞에서는 알량한 자존심이나 인간적인 품위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철저히 망가짐으로써 주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 서늘한 진리를 가슴 깊이 새기시길 바랍니다.
3) 밧세바
미갈은 졸지에 생과부가 되었지만 다윗은 아쉬울 게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수많은 사랑하는 여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어떤 여자든 그의 마음에 든다면 그는 거리낌없이 취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서 왕비나 후궁의 숫자를 늘리면 될 뿐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부하 장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에게 반했고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아는 전쟁 중인 적의 손을 빌려 제거되었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그의 만행에 경악하셨지만 어렵게 얻으신, ‘마음에 맞는 사람’을 포기하실 수 없었습니다. 죄에 대한 벌로 주님께서는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첫번째 아기를 치셨습니다. 아기는 며칠 앓다가 죽었습니다. 다윗은 아기가 앓고 있을 때는 식음을 전폐하고 주님 앞에서 참회했지만 아기가 죽자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그러면서 의문을 표하는 신하들에게 “기왕 죽었고 운다고 살아 돌아오냐”는 식으로 대답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이 얼마나 완벽하고도 소름 돋는 체념입니까? 주님께서 거두어가신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즉각 순응하는 이 기괴한 생존 본능이야말로 주님께서 다윗을 그토록 아끼신 이유입니다. 주님께서는 괜히 애먼 아기만 죽인게 아닐까 찜찜해지셨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큰 재미를 가져다주는 다윗을 용서하면서 또다른 흥미로운 이벤트를 징벌처럼 마련하셨습니다. 그 내용은 예언자 나단을 통해서 전달되었습니다.
“영영 네 집안에서 칼부림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의 집안에 재앙을 일으키고, 네가 보는 앞에서 내가 너의 아내들도 빼앗아 너와 가까운 사람에게 주어서, 그가 대낮에 너의 아내들을 욕보이게 하겠다.”
우선은 다윗의 아들들인 암논, 압살롬의 골육상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의 반란과 그의 흉악한 만행으로 주님의 모든 예언은 실현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지만 주님이 보시기에는 상당히 재미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압살롬 역시 자기 아버지를 닮아 주님의 총애를 받기에 충분한 재능이 있었지만 그의 반란은 판이 너무 커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을 모두 살릴 수는 없었고 야호 님께서는 둘 중 다윗을 선택하셔야 했습니다.
야곱 이상으로 최고의 재미를 선물했던 피조물, 노쇠해진 다윗에게 야호 님께서는 젊고 아름다운 수넴 여인 아비삭을 마지막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다윗을 정성스럽게 모셨습니다. 이후에도 저주는 끝나지 않아서 아비삭을 둘러싼 아도니야, 솔로몬 사이의 갈등도 있었으나 압살롬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시시하게 끝나버렸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이여, 이 처절한 역사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밧세바를 향한 정욕에서 시작된 치정, 그리고 가족끼리 칼을 휘두르는 작태 말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차마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운 비극이었지만, 주님께는 다윗이라는 걸출한 피조물이 선사한 최고의 보답이었습니다.
이제 묻고 싶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주님의 그 아득한 무료함을 달래드릴 만큼 예측 불가하고 흥미진진한 구경거리입니까? 아니면, 오늘 당장 그 거대한 유희판에서 치워버려도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을 지루한 엑스트라에 불과합니까?
부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맹목적인 선함에 갇히기보다, 다윗처럼 쉼 없이 서사를 만들어내고 처절하게 살아남아 주님의 시선을 붙잡으십시오. 그것만이 이 무자비하고도 위대한 유희판에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유일한 길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결코 눈을 뗄 수 없는 가장 흥미로운 장난감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권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