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버린 장기말, 사울
이스라엘 최초의 왕 사울이 왜 신의 버림을 받은 장기말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의 비극적 삶을 고찰합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다. 이스라엘 각 지파의 장로들이 이스라엘에도 왕이 필요하다고 사사인 사무엘에게 지속적으로 요청해서 왕으로 선정된 사람이다. 사무엘이 신에게 왕을 정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신은 “나를 섬기기보다 왕을 섬기고 싶어 하는구나. 맘대로 해보거라”라는 취지의 대답(사무엘기상 8:7)으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 왕으로 사울을 지명했다.(사무엘기상 9:15~17) 신의 미지근한 반응은 어쩌면 영웅 기드온의 아들이면서 세겜의 왕을 자처했던 사악한 아비멜렉이 저질렀던 폭정과 혼란에 대한 부정적 기억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신의 선택을 받은 사울은 나름 훌륭한 왕이었다. 용감하게 적들을 잘 물리쳤고 심성도 곧았다. 그러나 그는 신의 변덕 때문에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 같은 처지가 된다. 사울은 신이 떨떠름한 상태로 지명한 사람이었다. 신에게 사울은 별로 예쁜 구석이 없었다. 신은 한 번만 걸려봐라 하는 태도로 사울의 실책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블레셋의 침공이 있었을 때 사울은 이스라엘의 승리를 위해서 신에게 번제를 올렸다. 사울이 무작정 제사를 지낸 것은 아니고 제사장 사무엘이 오기로 한 날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자 어쩔 수 없이 지냈던 것이다.(사무엘기상 13:8~11) 병사들은 공포에 떨었고 리더로서 그는 무엇이든 시도해야 했다. 그러나 사무엘은 마치 관료주의로 똘똘 뭉친 공무원처럼 당신 권한이 아닌 일을 했다고 사울을 비난했다. 사무엘은 신의 이름으로 사울의 폐위 선언을 했다.(사무엘기상 13:14) 잘못의 원인은 늦게 온 사무엘에게도 있었는데 페널티는 온전히 사울이 덮어쓴 것이다. 사무엘이 사울을 진정 원팀으로 생각했다면 신에게 자신의 잘못도 있으니 사울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러질 않고 사울을 포기했다.
그러나 현실의 권력이 있던 사울이 폐위 선언으로 권력을 곧바로 잃은 것은 아니었다. 이후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노획한 전리품을 전부 불태워서 신에게 바치지 않고 일부를 비축한다. 그것은 여호수아기에서 예리코 성의 전리품을 가로챘던 아간의 사례처럼 개인적인 착복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다. 이스라엘은 당시에 철기가 보급되지 않아서 이웃 국가들과의 전쟁은 무척이나 힘겨운 일이었다. 그 전리품은 다음 전쟁에서 곤란을 당하지 않을 대비책이었을 것이고 통치자와 행정가로서 그것을 전부 포기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신에게 또다시 사울을 몰아낼 빌미를 주게 된다. 사무엘은 또다시 사울에게 폐위 선언을 한다.(사무엘기상 15:26), 사울은 진심으로 간절하게 용서를 빌고 처절하게 사무엘에게 매달렸으나 사무엘은 가차 없이 그를 뿌리쳤다.(사무엘기상 15:28) 신의 대리인으로서는 그랬지만 그래도 사무엘은 인정이 남아있는 사람이었다. 간곡하게 호소하는 사울의 마음이라도 달래주기 위해서 아무 효과도 없는 경배를 드린다.(사무엘기상 15:31)
신은 다윗이라는 더 마음에 드는 왕제를 곧 찾아냈고, 사무엘을 시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지명한다.(사무엘기상 16:13) 그때부터 사울의 비극이 시작된다. 사울은 본래 의로운 사람이었다. 사울은 그 외에는 별다른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다윗이 왕이 되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사울은 악당이어야만 했다. 세겜의 포악한 왕 아비멜렉 때와 마찬가지로, 신은 이번에도 악령을 보내서 사울을 미치게 한다.(사무엘기상 16:14) 잔인한 폭군으로 알려진 사울이 저지른 비인도적인 악행은 모두 신이 보낸 악령 때문에 사울이 미쳐서 저질렀던 것일 뿐 의로운 사람이었던 사울의 자유 의지가 아니었다. 신은 그렇게 다윗의 찬탈에 명분을 심어주고 있었다. 단지 사울이 저지른 죄악 때문에 신이 사울을 버린 것이었다면 사울의 아들이면서 가장 고결한 영혼을 가졌던 요나단에게 양위하게 하는 정도로도 충분히 그 과오를 속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은 자신이 사랑하는 다윗을 왕으로 삼기 위해서 사울뿐만 아니라 어떠한 인격적 결함도 없었던 왕자 요나단까지 죽음으로 몰아간다. 무결한 신앙심과 품성, 혈통적 정당성, 그리고 뛰어난 재능까지 뒷받침되는 요나단이 살아남았다면 다윗을 왕으로 즉위시킬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다윗 자신부터가 형제나 다름없이 여겼던 존경하는 요나단을 제치고 왕위를 승계하길 거부했을 것이다.
다윗에 대한 신의 사랑은 예사롭지가 않다. 골리앗을 물리치게 해 줬고 사울의 위협으로부터도 보호해 줬고 마침내 왕으로 즉위시켰다. 신은 다윗을 너무 사랑해서 심지어 메시아까지도 다윗의 혈통을 통해서 보낼 작정이었다. 다윗에 대한 신의 무한한 애착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런 가설을 제시해 보겠다. 이스라엘 각 지파의 장로들이 신에게 왕을 요구했을 때 신은 “이미 내가 잘 다스리고 있는데 굳이…”라는 냉담한 모습을 보였다. 신은 당시에 왕으로 쓰기에 마땅한 사람을 아직 마련해두지 않았었다. 그래서 신은 왕으로 쓸만한 사람을 만들 필요를 느끼게 된다. 신은 아담을 만들 때의 집중력을 다시 발휘해서 역대 최고의 마스터피스를 만들어서 이새라는 사람의 가정에서 태어나게 한다. 그 마스터피스는 신 자신의 모습을 빼닮은 남자 다윗이다. 다비드상이 그렇게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묘사되는 이유는 바로 신이 심혈을 기울여서 다윗을 창조했을 것이라는 작가적 상상력이 작용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리고 신이 가장 정성 들여 만든 인간, 다윗이 왕 노릇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왕 역할을 임시로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손쉽게 권력을 회수하여 다윗에게 넘길 수 있도록 임시 왕을 맡을 사람은 가장 미약한 지파였던 베냐민 파에서 찾아낸다. 그 임시방편 장기말이 바로 사울이다.
신은 사무엘에게 이새의 아들 중에서 자기의 ‘마스터피스’가 있으니까 그를 왕으로 만들라고 명령한다. 사무엘은 신의 뜻에 따라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의 자격을 부여한다. 그렇게 되자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라기보다는 다윗에게 시련을 주어 왕으로서의 자질을 가다듬게 하는 연마석 같은 존재로 전락해 버린다. 사울은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참회하고 신과 사무엘에게 비굴해 보일 정도로 비참하게 빌고 또 빌었지만 아무도 그를 용서하거나 동정하거나 구원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고통을 당하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받아들이게 된다. 신의 사랑을 독차지한 다윗은 밧세바 사건 같은 반인륜적인 잘못을 저질러도 참회를 하면 신은 대가를 치르게 하면서 자신의 소중한 자녀인 다윗을 용서했다. 다윗이 저지른 죄의 근원은 아름다운 밧세바에 대한 욕망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말로만 참회를 했을 뿐, 자신의 욕망에 끝까지 충실하여 밧세바를 곁에 두며 여생을 보냈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신을 섬기는 심각한 배교 행위들에 대해서까지도 직접 처벌받지 않고 솔로몬이 죽고 나서 그의 자식대 가서야 처벌을 실행되었다. 용서받을 아무런 기회 없이 사울에게는 가차 없는 처분을 내렸던 점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전통적인 시각에서는 다윗이 나단 선지자로부터 죄를 지적당했을 때 변명 없이 납작 엎드린 반면, 사울은 끝까지 변명하며 체면을 차리려 했다며 그를 정죄하곤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이 저지른 행위의 본질을 비교해 보면 죄의 무게가 완전히 다르다. 다윗의 행위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누구도 변호할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였다. 부하의 아내를 탐하고, 그 죄를 덮기 위해 충직한 부하를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다.
반면 사울의 실책에는 충분한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다. 적과의 전투를 목전에 두고 약속된 제사장이 오지 않아 병사들이 흩어지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면, 리더로서 직접 제사를 주관해서라도 군대를 결속시키려 한 것은 합리적인 선택에 가깝다. 비유하자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눈물 흘리는 ‘잭 더 리퍼’와, “조카가 굶어 죽어갈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빵을 훔쳤습니다”라고 항변하는 ‘장발장’을 나란히 세워두고, 후자가 변명을 늘어놓는다며 더 악하다고 비난하는 격이다.
사울은 신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지목되지 않았더라면 베냐민 지파의 존경받는 유력자 정도로 행복한 삶을 즐겼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신과 엮여서 버려지는 카드로서 고통스러운 삶을 감내해야 했던 사울에게 나는 깊은 동정을 느낀다. 다윗은 사울이 신이 보낸 악령에게 시달릴때마다 곁에서 수금을 연주해서 그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줬던 경험이 있다. 아마도 사울은 그때마다 다윗에게 감사를 표하며 자신의 고통과 과거의 잘못에 대한 회한을 말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다윗은 아마도 누구보다도 사울의 고통과 본심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깊은 연민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다윗은 사울에게 목숨을 위협을 당하는 상황에서 사울을 해칠 수 있는 기회가 몇 차례 있었음에도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무엘상 28장에서 사울의 마지막 밤을 지켜봤던 엔돌 무녀에 대한 상상을 해봤다. (2026년 4월에 추가함)
엔돌에 한명의 용한 무녀가 흘러들어왔다. 그녀는 사울 시대에 귀신을 섬긴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시골 구석인 엔돌까지 쫓겨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 무녀는 자신의 인생을 망쳐놓은 사울을 증오했다. 그런데 어느날 밤 사울이 변장을 하고 그녀를 찾아왔다.
그 무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돈도 뜯어내고 사울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면서. 사실 그여자는 무당이 아니라 거짓말쟁이였다. 배운 것도 없고 결혼도 하지 못한 그녀로서 먹고살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은 사람들의 공포에 기대어서 안식을 파는 일 뿐이었다. 그녀는 용하다고 소문이 났지만 정작 자신이 영을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애초에 위대한 신께서 만드신 세상에 귀신 따위는 없었다. 존재하는 것은 사람들의 두려움뿐이었고, 그녀는 그 두려움을 읽고 마음을 이용하는 데 능했을 뿐이었다.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의 영을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신께서 원수를 그녀의 손에 넘겨주신 셈이었다. 그 무녀는 사울을 괴롭히기 위해서 사무엘의 흉내를 냈다. 정말 사무엘의 영이 온 걸로 꾸미기 위해서 두려워 하는 척을 했다. 그녀는 뒤로 벌렁 자빠지면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 임금님!! 늙은이의 모습을 한 영이 제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는 평생 귀신을 부른 사람인데도 저 거대한 영만은 너무도 두렵습니다. 이걸 제가 반드시 해야 하는 겁니까? 저를 살려주십시오!”
무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입을 열었다. 살짝 굵어진 듯한 목소리다.
“왜 편하게 자고 있는 나를 깨우시오?”
“오랜만입니다, 선지자님. 내일 전투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주님께서는 당신을 원수로 여기셨고 내일이 당신과 당신 아들이 죽을 날이오”
무당은 이렇게 말하고서 쾌감을 느꼈다. 내일 사울이 이길지 질지는 무녀 자신도 몰랐다. 그냥 하루종일 찜찜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걸 복수로 여기고서 자기는 다른 곳으로 도망갈 생각이었다. 어쩌면 기분이 싱숭생숭해져서 전투에 영향을 미칠테고 실제로 그게 패배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사울이 죽는다면 예언이 성공한 것이고 틀리면 도망가면 그만이었다. 애초에 그곳 자체도 쫓겨나서 정착한지 얼마되지 않은 곳이라서 사실상 나그네랑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사울이 이렇게 말했다.
“사실 내일 전투가 승산이 없을 것은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소. 우리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감당할 힘이 없소. 하지만 내 아들 요나단만은 어떻게 살 수 없겠소? 그 아이는 누구보다도 주님께 순종하는 자요.”
무당은 당황했다. 요나단의 명망과 미담은 그녀도 알고 있었거든. 하지만 사무엘의 영이 들어왔다는 연기를 그만둘 수는 없어서 이렇게 대답했다.
“주님께서는 원수를 삼사대까지 갚으시는 분이오. 아버지가 먹은 포도에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을 그대도 알 것이오.”
“좋소. 어차피 주님께 버림받은 이 세상에 더이상 미련은 없소. 내 아들도 이런 세상이라면 빨리 하직하는 게 오히려 행복할지도 모르겠지. 그런데 내가 그대에게 묻고 싶은 건 따로 있소이다. 사실은 이걸 묻기 위해서 그대를 부른 것이라오.”
“무엇이오?”
“주님께서는 나에게 기름을 부으신 걸 후회한다고 하셨소.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내가 어떻게 될지를 모르시고 나에게 기름을 부으신 것이오? 알면서 그렇게 하셨다면 왜 후회를 하신 것이오?”
무당은 할말을 잃었다. 최대한 머리를 짜내서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주님의 뜻을 그대로 전달하는 자에 불과하오. 그 뜻을 어찌 내가 알겠소?”
사울의 눈빛에 경멸이 어렸다.
“그렇다면 말을 바꿔서 물어보겠소. 당신은 정말 주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한 것이오? 정말로 주님께서 후회를 하신 것이냐는 뜻이오.”
“그렇소.”
“나는 그 말을 믿기가 어렵소. 당신은 나를 이끌어줄 선지자라고 행세를 했지만 그대가 나에게 해준것은 오직 기름을 부어준 것이 전부였소. 그대는 길갈에서 제사를 지내는 약속시간을 어겼소. 제사를 지내지 않자 불안해진 병사들은 하나 둘 도망을 갔었고 사기는 바닥을 찍었소. 만약 적이 그때 습격이라도 했다면 우리는 몰살을 당했을거요. 당신은 정말로 그날 최선을 다해서 달려온 것이오? 아니면 내가 어쩔 수 없이 제사를 지낼때까지 숨어서 우리 진영을 지켜봤던 것이오?”
“당연히 나는 최대한 뛰어온 거요. 적들이 길목을 막고 있어서 돌아올 수밖에 없어서 그랬소.”
“당신은 나와 주님 사이에 중보자 역할을 했어야 했소. 잘못을 했으면 빌고 용서를 받아야 했는데 당신은 나에게 아무런 기회를 주지 않았소. 오히려 나와 주님 사이를 이간질한 것 아니오? 나는 본래 무지렁이였소. 나는 성미가 급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오. 당신은 주님과 나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진심으로 무엇이라도 해본 적이 있소?”
“그건…”
“혹시 그날 내가 늦게 온 그대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오?”
무당이 두사람 사이의 말을 알 리가 없었다. 무당은 대답했다.
“기억나지 않소.”
“불리한 건 기억하기 싫은가 보군. 그렇소? 나는 이렇게 말했소. 제사장님. 제사장이 없는 제사는 그냥 소를 불태운 행위에 불과합니다. 제사장님이 계셔야 제사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단지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한 연극을 진행했을 뿐입니다. 제가 불순종을 저지를 리가 있겠습니까? 이제라도 오셨으니 어서 제사를 지내주십시오.라고.”
“아!! 그 말장난? 그런 말도 안되는 변명이 주님께 통할 것 같소?”
사울은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당신 속을 모를 것 같소? 당신의 두 아들은 뇌물을 받고 재판을 왜곡시켜서 신망을 잃었소. 당신은 아들에게 사사 자리를 물려주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당신 아들들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왕을 요구했소. 당신이 나에게 기름부을 때 그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하오. 그 멸시하는 눈빛. 나는 사람이 위를 올려다보면서도 내려 깔아볼 수 있는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오.”
엔돌 무녀는 더이상 할 말을 잃었다. 오만한 미친 왕의 세계는 자기가 생각한 것과는 정반대였다. 무당들을 몰아낸 것은 누구보다도 확고한 왕의 신에 대한 순종이었다.
“당신의 그 심술은 평생 나를 괴롭게 했었소. 나를 폐위시킨다고 하셨지만 그러고도 나는 매번 싸울 때마다 이겼소. 주님께서는 그날 이후로도 나와 왕자를 도우셨소. 정말 그날 주님께서 나를 폐위시킨 게 맞소? 당신이 기름을 부은 다윗도 나를 기름부음을 받은자라고 존중하면서 두번이나 기회가 있었지만 나를 죽이지 못했소. 나는 주님께 매일같이 그날의 잘못에 대한 참회의 기도를 드렸소. 하지만 주님께서 나에게 당신의 뜻을 알릴 방법은 선지자라고 말한 당신 입 뿐이었지. 당신은 나에게 주님의 뜻을 전했소? 당신은 혹시 나를 폐위시켜달라고 번제라도 드린 것 아니오? 그 잘난 제사장의 권한을 이용해서 말이오.”
사울의 수십 년 묵은 앙금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무당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정말로 사무엘의 영이 자신에게 씌여서 이 상황을 감당했으면 좋겠다는 망상에 빠지면서 괜시리 복수를 하고자 했던 게 아닐까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럴리가 있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당신이라면 그럴리가 있지. 아각왕을 기억하시오? 그는 참 좋은 왕이었소. 백성들을 사랑하고 책임을 짊어진 사람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었지. 아말렉을 진멸했을때 그는 차라리 백성들 대신 자기를 죽여달라고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었소. 단 한명의 백성이라도 더 죽이지 않는다면 기꺼이 자기의 목숨을 내놓겠다고 했지. 하지만 주님의 명령이니 나는 가슴을 찢으며 그 명령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소. 그 남자의 뜨거운 눈물을 보자 나는 그를 차마 죽일 수가 없었소.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소. 이방인 라합은 유다 사람이 되었듯 당신도 우리 백성이 되자고 권했지. 주님께서는의로운 사람까지 모두 멸하시는 분은 아니란 걸 나는 알았소. 롯과 라합처럼 말이오. 나는 본디 천한 사람이오. 그에게서 왕의 품격에 대해 배울 게 많아 보였지. 나는 그와 우정을 나눠보고 싶었소. 그는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내가 끈질기게 설득하자 결국은 마음을 돌렸소. 언제 할례를 할지 날짜를 잡기에 이르렀지. 그런데 그런자를 그대가 난도질을 했소. 노인의 힘으로 사람의 몸을 동강낼 수 있다니 그대는 선지자보다는 전사가 어울렸을 것 같소이다.”
“핑계 대지 마시오. 폐하께서는 모든 것을 멸하라는 주님의 명을 어기고서 좋은 짐승들을 남겨두셨소. 그러고는 주님께 바치려고 따로 빼놨다고 하다니. 헤렘이야말로 진정한 봉헌인데 모든 것을 꿰뚫어보시는 주님을 향해서 얼토당토 않은 궤변을 늘어놓으셨단 말이오.”
“그 점은 나도 후회하오. 그 짐승들은 사실은 아각 왕에게 줄 것이었소. 그는 한때 왕이었던 사람이오. 나의 벗이 되기 위해서는 내 궁전 안의 가신이 아니라 홀로 설 수 있는 기반이 있는 자여야 했소. 하지만 그대가 그를 잔인하게 토막냈기 때문에 그 짐승들도 모두 쓸모 없는 것이 되었소. 결국 그럴 줄 알았다면 짐승들을 모두 처음부터 죽였어야 했는데.”
“할말이 끝났소? 임금께서는 누구보다 참혹한 일들을 저지르시곤 하셨소. 제사장들을 죽이고 아들 요나단에게 창까지 던졌지.”
분노로 타올랐던 사울의 눈이 처연해졌다.
“물론 나도 큰 잘못을 하였소. 주님께서 악한 영을 보내셔서 내 뜻과는 상관없이 참혹한 일을 내 몸을 통해 벌이셨소. 나는 그것에 따르지 않고 저항했어야 하는데 주님께서 보낸 영에 저항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짜 순종이라고 믿었소. 혹시 나는 매번 틀린 결정만 하는 바보였던 것이오?”
무녀는 무엇이라 대답을 할지 한동안 말을 잃었다. 사울이 말을 이어갔다.
“내 아들 요나단을 내 손으로 죽이려 했던 끔찍한 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했구려. 그대는 엘리의 아들의 자리를 대신했소. 자식들이 불경했기 때문이오. 그대의 자식들도 엘리의 자식과 다를바가 없소.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셨지.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살아있소. 내 아들은 당신 아들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고결한 사내지. 마지막으로 내가 아닌 그 아이를 위해서 주님께 중보기도를 해 줄수는 없겠소? 아들을 제 손으로 죽이려고 한 못난 아비의 마지막 소원이오. 결국 그 아이는 당신이 말한대로 죽겠지만 그래도 당신이 그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싶소.”
사울은 무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무녀는 사울에게서 눈물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사울을 위해서 실제로 기도를 할까 망설였으나 그럴수가 없었다. 신과 직접 소통한 선지자의 기도를 참칭하는 것은 평생 거짓말로 힘든 사람들을 밥먹듯 속여왔던 그녀로서도 차마 감당할 수 없는 질식할 듯한 죄의식을 동반했다. 그녀는 고민 끝에 이렇게 입을 열었다.
“영이 떠났습니다.”
“나는 결국 저주 외에는 아무 말도 듣지 못했구나. 그가 죽기 전과 똑같이 말이다.”
사울은 기진맥진해서 쓰러졌다. 늙은 왕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무녀는 잠시 밖에 나갔다가 들어와서 말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지금 막 살진 송아지를 잡게 했습니다. 내일 전투를 위한 번제를 올려보시겠습니까?”
“제사장 없이 번제를 지낸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나는 이미 회개했는데 다시 잘못을 저지르고 싶지 않다.”
“마을에 제사를 잘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번제가 부담스러우시다면 화목제라도…”
“괜히 제사를 지내서 이 마을에 돌아올 화를 만들지 말거라. 늦은 시간이지만 동네 사람들을 불러서 나눠 먹자꾸나. 마지막으로 내 백성들을 보고 싶구나. 소 값은 내가 넉넉하게 주겠다. 마지막 식사를 차려줘서 고맙구나. 내가 살아있을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죽을 때까지 절대 잊지 않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