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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한서 4장: 왕들의 이야기

솔로몬은 왜 우상을 숭배했을까? 이스라엘 백성을 신의 가학적인 유희로부터 숨기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건 지혜의 왕 솔로몬의 배교와 유다 왕국의 멸망사를 다룹니다.

파한서 4장: 왕들의 이야기

4. 왕들의 이야기

1) 지혜로운 솔로몬

진리를 탐구하는 나의 소중한 벗들이여. 세간의 어리석은 종교인들은 지혜의 왕 솔로몬이 말년에 이방 여인들의 치마폭에 휩싸여 노망이 들고 타락했다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우리 파한교의 눈으로 보는 진실은 전혀 다릅니다.

야호 님께서는 당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 다윗의 왕위를 승계한 젊은 솔로몬을 흐뭇하게 지켜보셨습니다. 솔로몬은 때로는 지혜롭게 때로는 무자비하게 자신의 권력을 구축하고 외교 관계를 탄탄히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자신의 또다른 최애가 될 솔로몬을 만나고 그를 축복하시기 위해 그의 꿈속을 친히 방문하셨습니다. 주님을 영접한 솔로몬은 주님께 선과 악을 구별할 능력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약간의 찜찜함과 큰 호기심을 느끼시고 이렇게 생각하셨습니다.

‘오호!! 선과 악을 구별하겠다고? 역시 사랑하는 내 딸, 하와의 후손 답군. 혹시 나까지 판단하려고 들지 않을까? 그런다면 정말 재밌어 지겠는걸…’

하지만 야호 님께서는 이런 속내를 숨기고 지혜로움을 선택한 솔로몬을 칭찬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주님의 축복을 받아들이고 처음으로 그 능력을 발휘하다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뭐야? 주님이 선하지 않다고??? 혹시 그 꿈은 계시가 아니라 개꿈이었던 걸까?’

솔로몬의 현명함은 곧 그것이 개꿈이 아니었음을 알아차리게 했습니다. 그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웃사라는 사람이 주님께 맞아죽은 적이 있었다고 했고 아버지께서는 베레스 웃사라는 기록을 남기셨지. 좀 이상한 사건이지만 굳이 더 따지고 싶진 않아. 그리고 나 대신 주님의 손에 죽어 준 불쌍한 내 친형, 그 아기에게 무슨 죄가 있었던걸까? 그리고 인구조사를 하고 나서 전염병으로 죽어버린 7만 명이나 되는 나의 백성들은?’

솔로몬은 속내를 알 수 없고 음침한 구석이 있는 주님을 안전하게 손절하여 후손들을 자유로 인도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그가 느꼈을 그 지독한 절망과 공포가 상상이 가십니까?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가 되어 창조주를 직시한 순간, 그 끝없는 지혜가 도달한 결론이 참혹하게도 ‘우리의 신은 선하지 않다’는 끔찍한 진실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심기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민족 자체의 자멸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자신의 거짓된 충성심을 주님께 충분히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거대고 호화로운 성전을 지어서 주님의 집인 언약궤를 모셨습니다. 그리고 잠언과 전도서를 썼습니다. 당시에 찬양을 극도로 재미있어 하셨던 주님조차 닭살이 돋는다고 손사래를 치게 할 법한 아가서까지 써낼 정도였습니다. 이 정도까지 했으니 솔로몬의 신앙심을 의심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교활한 솔로몬의 지혜는 철두철미했습니다.

노년이 되자 솔로몬은 자신의 사명을 실행할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그는 지난 수십 년 간 다양한 민족들 사이에서 수집하듯 선발해 왔던 700명의 왕비와 300명의 후궁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며, 오랫동안 준비해온 원대한 계획을 스리슬쩍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에 다양한 종교들이 유입되게 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야호 님에 대한 신앙은 점차 옅어졌습니다.

물론 그 이방의 신들이 모두 나무토막에 불과한 가짜라는 것을 지혜의 왕 솔로몬이 모를 리 없었습니다. 그는 가짜 신을 섬기는 아시리아나 이집트 같은 다른 민족들에 비해, 진짜 신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딱히 추가적인 은혜를 받는 것도 없다는 현실을 냉혹하게 꿰뚫어 보았습니다. 야호 님과의 안전한 이별과 연착륙을 꾀한 솔로몬의 이 배교 행위는, 백성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건 거대한 도박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아버님(다윗)과 맺으신 언약에 따르면, 야호 님께서는 우리 가문의 영원한 왕위를 보장하셨다. 나와 내 후손이 주님께 죄를 지을지언정, 사람의 매와 채찍으로 징계하실 뿐 사울에게서 왕위를 빼앗듯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시겠다고 약조하셨지. 그렇다면 내가 징계를 받는 방패이자 속죄 제물이 되겠다. 백성들이 이민족의 가짜 신에게 기대어 주님의 지독한 시선에서 벗어나게 하고, 오직 나와 내 후손들만이 주님과의 언약을 유지하며 그 매를 감당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렇게 백성들을 주님의 변덕스러운 유희에서 해방시키고, 나와 내 가문이 이 모든 죄악과 오명을 기꺼이 떠안겠다. 그것이 백성을 사랑하는 왕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마지막 의무다.”

솔로몬은 특유의 지혜를 발휘하여, 야호 님께서 판을 완전히 엎어버리기에는 애매한 선까지만 도발을 유지하는 기가 막힌 줄타기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솔로몬의 후손들은 이 지혜로운 선조의 탁월한 관리 능력을 이어받지 못했습니다. 평범한 인간에게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너무도 버거운 유산이었습니다. 결국 솔로몬이 죽고 둔탁한 후손들이 선을 넘나들기 시작하자, 주님의 진노를 피하지 못한 이스라엘은 참혹하게 남북으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솔로몬이 바랐던 진정한 목적이었습니다. 왕국이 쪼개지고 힘을 잃어 변방의 약소국으로 전락하자, 역설적으로 이스라엘은 주님의 흥미를 끄는 주된 놀이터에서 완벽하게 제외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둔한 후손들은 솔로몬의 이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찢어진 나라에서 서로 권력 다툼을 하느라 바빴지만, 덕분에 평범한 백성들은 주님의 잔혹한 시야에서 벗어나 소소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의 벗들이여, 이토록 눈물겨운 솔로몬의 지혜를 가슴에 새기십시오. 우리는 여기서 피조물의 두 가지 생존 방식을 봅니다. 다윗처럼 기꺼이 주님의 광대가 되어 매 순간 아슬아슬한 유희를 제공하거나, 아니면 솔로몬처럼 철저히 평범하고 무능해져서 주님의 무관심 속에 숨어들거나. 어느 길을 택할지는 주님께서 주신 여러분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2) 거대 제국들의 침략

성도 여러분. 지금부터는 상식적으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솔로몬 이후 여러 왕들과 야호 님과의 관계를 해석한 우리 파한교만의 관점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로운 계획은 결국 성공했습니다. 분열되고 쇠약해진 이스라엘은 더 이상 주님의 흥미로운 놀이터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님의 관심이 떠난 빈자리를 채운 것이 평화가 아니라 제국들의 그림자였다는 점입니다.

세계 각국에서는 중앙 집중 권력체제를 앞세운 거대 제국들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의도했던 대로 분열된 촌 동네인 가나안 땅에 이런저런 좁쌀영감 같은 간섭을 하시는 것보다는, 거대 제국을 이끌어가는 인간을 관찰하시는 데서 야호 님께서는 더 큰 재미를 느끼시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의 유산은 이렇게 백성들을 주님의 잔혹한 유희로부터 성공적으로 숨겨주었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아합과 이세벨 같은 흥미로운 인물이 나타나거나 엘리야와 엘리사 같은 특별한 선지자의 요청이 없다면 이스라엘에는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는 시기를 보내시게 되었습니다. 직접 돌봐주시던 야호 님의 손길이 끊기자 안 그래도 예전에 비해 소원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은 더욱 약해져갔습니다. 아모스나 이사야 같은 영성 높은 예언자들만이 간간이 나타나서 군중을 상대로 신실한 신앙의 중요성과 도덕의 회복을 외칠 뿐이었습니다.

히스기야

한동안 세계 각국의 역사를 흥미롭게 구경하시던 야호 님께 어느 날 긴급한 기도가 들어왔습니다. 솔로몬의 계획으로 야호 님께서는 거의 잊고 지내셨던 유다 왕국에서 히스기야 왕과 예언자 이사야가 제발 살려달라고 간청한 것이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신흥 강국 앗시리아에게 조공을 바치며 최대한 비위를 맞추고 있었으나 앗시리아는 유다 왕국을 점령하고자 했습니다. 솔로몬이 의도적으로 약체화시킨 나라가 제국의 침략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이었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책임지겠다고 약속을 해놓으시고는 사태가 그렇게 커질 때까지 유대인들을 방치했던게 민망해지셨습니다. 야호 님께서 관심있게 지켜본 앗시리아의 전력을 감안했을 때 유다 왕국이 그들과 맞붙는 것은 자살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충성스런 종 히스기야를 위해 천사를 보내셔서 앗시리아군을 치게 하셨습니다. 18만 5천명의 앗시리아 군인들이 학살 당했습니다. 궤멸적 타격을 입은 앗시리아는 철군했고 그렇게 한동안 유다 왕국은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위대한 기적입니까. 하지만 이것은 역사적으로는 야호 님께서 마지막으로 보여주신 거대한 규모의 기적이었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일단 급한 불은 끄셨지만 이런 직접적인 대규모 개입이 옳은 것이었는지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일으키신 기적은 국제 정세에 주요 변수가 되어 제국들의 행보를 관전하는 재미를 크게 떨어뜨릴 것이었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앞으로는 더 이상 그런 거대한 초자연적 현상을 벌이지 않겠다고 결심하셨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요나를 통해 재미삼아 니느웨를 협박했던 것 같은 사건을 종종 일으키다보면 또다시 그 옛날의 바벨탑 같은 게 다시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고 자각하셨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이후 군사적 위력을 가지는 기적에 대해서 철저하게 자중하게 되셨습니다.

신실하신 성도 여러분. 히스기야의 기적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진실은 이것입니다. 솔로몬이 세운 방패는 양날의 검이었습니다. 주님의 무관심 속에서 백성들은 잔혹한 유희에서는 벗어났지만, 정작 제국의 철퇴가 내려칠 때 주님을 불러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한 번은 응답하셨지만, 두 번째는 없을 것임을 스스로 결심하셨습니다.

요시야

유다 왕국에는 한동안 불안한 평화가 이어졌습니다. 히스기야는 죽고 그의 늦둥이 아들 므낫세가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주님께서는 히스기야와 달리 신앙심이라곤 찾을 수 없는 므낫세 왕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솔로몬의 계획으로 촌동네로 전락해버린 이스라엘은 이미 주님의 큰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므낫세와 별다른 소통 없이 그의 치세를 방치하셨습니다. 므낫세는 천수를 다하고 죽었고 잠시 왕위를 이은 아들 아몬도 곧 죽었습니다.

므낫세의 어린 손자 요시야가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요시야는 할아버지 므낫세와는 달리 매우 독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요시야는 솔로몬과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선조가 일부러 끊어놓은 주님과의 연결을 다시 복원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주님의 시선은 제국들의 빅매치를 향해 있었고, 솔로몬이 만들어 놓은 ‘무관심의 관성’은 한 사람의 신실함으로는 뒤집을 수 없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과거 다윗의 죗값을 그 아들들이 치러야 했듯, 할아버지 므낫세가 저지른 죄의 대가를 아버지 아몬이 목숨으로 지불한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는 할아버지의 죄악을 대신 참회하고 아버지의 이른 죽음을 헛되지 않은 것으로 만들고자 평생을 애썼습니다. 요시야 왕은 므낫세가 망쳐버린 성전을 정화하고 백성들을 야호 신앙으로 다시 이끄는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신실함 자체는 기특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요시야 왕의 행보는 고루하고 따분해 보였기에 기특해 하심과 별개로 그는 주님의 관심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빠르게 돌아가는 당시의 국제 정세를 탐닉하실 뿐이었습니다. 마침 신흥 강국 바빌론에 의해 앗시리아가 위기에 처했고 앗시리아는 이집트에게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이집트 파라오 네카우 2세는 군사를 이끌고 앗시리아를 도우러 출병했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3개의 제국이 맞붙는 빅매치를 볼 생각에 손에 땀을 쥐고 계셨습니다. 야호 님께서 네카우 2세의 병력이 가나안 땅을 지나고 있는 모습을 주시하고 있는데 갑자기 당신께서 귀여워하시는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난데없이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요시야 왕이 난입한 것이었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당황하시며 “어? 네가 여기서 왜 나와? 얼른 돌아가라. 그러다가 다친다.”라고 계시를 하시고자 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랜 침묵 끝에 수십 년만에 처음으로 내리는 계시였는데 그 내용이 겨우 ‘도망가라’는 의미라서 말을 꺼내시기가 몹시 쑥스러우셨습니다. 그래서 요시야에게 직접 전하시지는 못하고 아쉬운 대로 네카우 2세에게 대신 계시를 내리셨습니다.

“이집트군을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두라고, 내가 시켰다고 요시야에게 전해다오. 그는 정말 좋은 왕이니까 안다쳤으면 좋겠다.”

네카우 2세는 주님께서 시킨대로 했지만 요시야 왕은 이를 자신의 신앙에 대한 조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젊고 용감한 요시야 왕은 더욱 거세게 맞서 싸우다가 므깃도에서 전사했습니다. 향년 39세. 야호 님께서는 비록 따분했지만 누구보다 깊은 신앙심을 보였던 요시야의 요절을 애석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체면을 따지지 않고 반드시 믿을 만한 사람에게 명확하게 계시를 내리겠다고 결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동행자들이여. 솔로몬은 백성을 주님의 변덕스러운 유희에서 해방시키고자 일부러 나라를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덕분에 평범한 백성들은 잔혹한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주님의 사랑을 되찾고자 했던 가장 신실한 왕은 그 무관심의 장벽에 부딪혀 허망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얄팍한 충성심이나 도덕적 완벽함이 결코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이 서늘한 진실을 뼈에 새기십시오.

유다 왕국의 멸망

이후에도 국제 정치를 분석하는 야호 님의 취미는 지속되었고 당신께서는 바빌론이 패권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당신의 국제 분석을 계시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의 친 이집트 정책을 폐기하고 바빌론에게 저항하지 말 것을 꾸준히 설파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예언은 무시되었습니다.

요시야 왕이 전사한 지 20여 년이 지났을 당시,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에게 바빌론에 항복하라는 주님의 계시를 간곡히 전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다 왕국 신하들 사이에는 친 이집트파가 득세하고 있었습니다. 시드기야가 그들을 설득하여 바빌론에 항복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유다 왕국의 친 이집트적 행보는 바빌론 느부카드네자르 2세의 침공 명분이 되었습니다. 결국 시드기야는 느부카드네자르 2세를 상대로 무의미한 항전을 하다가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생각보다 잔인했던 처형 방식에 눈살을 찌푸리셨지만 결과적으로는 귀찮은 혹이 하나 떨어진 셈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동행자들이여. 솔로몬의 거대한 도박은 여기서 최종적인 결산을 맞이했습니다. 백성들은 주님의 잔혹한 시야에서는 벗어났지만, 그 대가로 제국들의 발 아래에서 짓밟혔습니다. 야호 님의 장난감이 되는 것도 비극이었지만, 야호 님의 무관심 속에 버려지는 것 역시 또 다른 비극이었습니다. 부디 지혜의 눈을 떠서, 역사의 물결에 떠내려가는 티끌이 되지 말고, 주님의 장기판 위에서 쓸모 있는 말로 살아남으시기를 간절히 권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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