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한서 2장 - 유희의 장: 에덴동산부터 아브라함의 언약, 욥의 고난까지
전능한 창조주의 '지루함'이라는 관점에서 구약의 난제들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 바벨탑, 욥의 고난에 숨겨진 신의 유희라는 관점에서 실존주의적 블랙 코미디로 그려냈습니다.
2. 신의 지루함을 달래줄 놀이
1) 에덴 동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주님의 무한하심과 완전성이라는 무거운 교리의 산을 함께 넘었습니다. 신을 도덕적인 잣대로만 재단하려 했던 세속의 낡은 허물이 조금은 벗겨지셨는지요.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시선을 태초의 시간으로 돌려봅시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던 그 고요한 에덴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주님은 우리를 이 험난한 세상으로 내몰고 유희를 시작하셨을까요? 그 거대한 서사의 시작은 다름 아닌, 전능자의 숨 막히는 ‘지루함’이었습니다.
형제 여러분께서는 주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던 날 당신께서 보시기에 좋으셨다고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주님께서 느낀 감정은 지루함이었습니다. 세상을 만들 때의 몰입은 주님께 즐거움을 드렸으나 창조를 마치고 나서는 다시 아무런 변화 없는 일상이 지속되었습니다. 세상 자체가 애초에 당신께서 설계한 것이라서 딱히 궁금할 것도 없고 전능한 존재인 주님께는 도전적인 일 역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관심사는 오직 우리들의 조상인 남자와 여자 뿐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스스로 만드신 동식물들이 에덴동산 밖으로 나가건 말건 신경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바깥 세상에서 운석이 떨어지든 화산이 터지든 이산화탄소 농도가 바뀌든 말든 주님의 관심사는 오직 에덴동산뿐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삼엽충, 상어와 공룡 등이 지상과 바다 속을 배회하다가 땅속에 파묻혀 석유가 되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지루한 나날들이 영겁처럼 지나가던 와중에 야호 님께서는 최초로 재미를 느낄 만한 사건을 맞이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당신의 명령만 따를 것이라 믿었던 인간들이 주님의 지시를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었습니다. 이는 창조 이후 수십억 년만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당신의 예상을 깨버린 그 사소한 사건에 재미를 느끼시고 다행이라 생각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겉으로만 인간에게 과하게 화내는 척을 하면서 인간을 에덴동산 밖으로 방사하셨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샌드박스는 에덴동산에서 세계 전체로 훨씬 거대해졌습니다. 그리고 퍼져 나가는 인간을 관찰하면서 그들의 예측 불가한 행동들을 즐겨오셨던 것입니다.
한편,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더이상 생명나무 열매를 먹을 수 없게 되어서 필멸자가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첫해가 되었을 때 아담은 자기의 나이를 1살로 세기 시작했습니다. 죽는 날이 있어야 나이를 세는 의미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930년 후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한편 사람의 아들 카인이 아벨을 살해했을 때 야호 님께서는 또다시 예측 못한 흥분감을 느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럭비공 같은 카인을 통해 큰 재미를 얻고 싶었기에 그를 보호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카인에게 표식을 주고 그에 대한 다른 인간들의 보복을 방지하셨습니다. 카인과 그의 동생 셋(Seth)은 자녀를 낳아서 대를 이어갔습니다. 그들은 장수를 누리며 딱히 부족함 없이 세상을 살면서 자연스럽게 신을 찬양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2) 노아의 방주와 바벨탑
카인과 셋의 후손들이 안락함 속에서 그저 틀에 박힌 찬양만을 반복했을 때, 하늘에서 이를 내려다보시던 주님의 눈빛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파한교는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무한한 신을 ‘지루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피조물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하고 위험한 죄악입니다. 결국 주님은 이 단조로워진 놀이판을 한 번 뒤엎고, 새로운 규칙을 적용하기로 마음먹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이 ‘구원의 은혜’라고 착각해 온 노아의 홍수 사건입니다.
인간들의 천편일률적인 찬양이 이어지자 주님께서는 또다시 지루함을 느끼셨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하자면, 이지 난이도로 게임을 하다가 불감증에 빠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감히 신을 지루하게 만든 것은 피조물로서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죄악이었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인간을 만든 것을 후회하시다가 자신의 놀이를 초기화해보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너무 악하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선하지도 않은 노아라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방주를 만들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러고는 노아의 가족들을 제외한 모든 인간을 물로 쓸어버리시고 새로운 시작을 하셨습니다.
우리 파한교에서는 야호 님께서 노아의 방주에 동물들을 태우게 한 이유를 다양한 생물의 종을 보전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에서 뿌리를 내려야 할 노아의 실행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일 뿐으로 해석합니다. 주님께서 직접 지시하신 규격의 방주는 3층에 연면적 2750평 정도입니다. 현대적 감각으로 환산하면 이마트 매장 규모 정도에 불과해서 지구상의 모든 종의 동물들을 탑승시킬 수 없습니다. 심지어 수백 일 동안이나 그것들 모두를 먹일만한 사료를 적재해야 하는데 그런 건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태우지 못했던 나머지 동물들은 홍수 기간 중에 야호 님께서 별도로 보호하시다가 제자리에 돌려놓으셨다고 믿습니다. 그리하여 남극에는 펭귄이, 북극에는 북극곰이, 호주에는 캥거루와 코알라가 아메리카에는 퓨마와 재규어, 버팔로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으로 보아서 기존에 불신자들이 유치하게 제기하곤 했던 노아 이야기의 물리적 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변증합니다.
지나치게 편한 플레이가 재미를 없앤다는 점을 알게 되었기에 야호 님께서는 그동안의 규칙을 바꾸셨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별로 훌륭한 인간은 아니었던 노아를 완악하게 하여 자신의 아들 함에게 저주를 내리게 하셨습니다. 노아의 저주로 함의 후손들은 다른 형제들의 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부당한 불평등이 대를 이어 발생했고 인간 세상은 홍수 전보다 흥미롭고 다이나믹해졌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이것을 미리 계획하셨고 앞으로는 세상을 리셋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확신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홍수가 끝나자마자 노아와 그 자식들에게 앞으로는 홍수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인간들은 늘 그랬듯 신의 은혜에 감복하여 하늘에 닿을 듯한 바벨탑을 만들어서 또다시 야호 님을 찬양했습니다. 당신의 놀잇감이 또다시 단조로워지는 걸 극히 꺼렸던 야호 님께서는 사람들의 언어를 서로 다르게 하여 그들을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야호 님에 대한 찬양은 각 민족별로 파편화되어 잊혀졌고 모든 민족은 각각의 상상 속의 거짓 신을 믿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야호 님께서 원하셨던 게임의 판이 깔린 것입니다.
이미 재미있는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질 판이 깔렸기 때문에 인간들이 바벨탑보다 더 큰 건축물을 짓든, 사악한 만행을 저지르든 주님께서 더이상 인류를 멸망시키거나 언어를 더욱 파편화시킬만한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3)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
언어가 흩어지고 민족들이 찢어지면서, 드디어 세상은 주님께서 원하시던 대로 혼란과 다채로움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자, 나의 벗들이여. 만약 여러분이 이 모든 패를 쥐고 있는 전능자라면, 이제 막 재미있어진 이 체스판 위에 어떤 말을 올리시겠습니까? 거대한 피라미드를 짓는 이집트나, 이미 모든 것을 갖춘 메소포타미아 제국을 조종하는 것은 영 능력이 없는 자들에게나 어울리는 시시한 놀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야호 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욥 같은 별 볼 일 없는 세력을 가진 부족장들과 접촉하여 도전적인 신앙 게임을 시작하기로 하셨습니다. 이 점은 신명기 7장 7절과 9장 6절에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사랑하시고 택하신 것은, 당신들이 다른 민족들보다 수가 더 많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들은 모든 민족 가운데서 수가 가장 적은 민족입니다.”(신명기 7:7, 새번역)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이 좋은 땅을 당신들에게 주어 유산으로 차지하게 하신 것이, 당신들이 착하기 때문이 아님을, 당신들은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당신들은 고집이 센 백성입니다.”(신명기 9:6, 새번역)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욥을 시험하셨습니다. 우선 아브라함에게는 할례를 요구해봤습니다. 가장 수치스러운 곳에 극심한 고통을 강요해본 것입니다. 마취도 소독약도 예리한 칼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그가 시킨대로 해버렸습니다. 심지어 하루만에 자기뿐 아니라 수백명이 넘는 자기의 종들까지 단숨에 처리해버린 것입니다.
언뜻 자비로운 인상과 언행에 착각하기 쉬웠지만 사실 그의 과거를 보면 그는 한 성깔 하는데다가 종들에게는 꽤나 무서운 주인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그의 종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야!! 내 말대로 포피만 조금 벗길래? 아니면 너와 네 아들의 등가죽과 뱃가죽으로 네 딸이 무두질을 하게 해볼까?”
그의 종들은 엉엉 울면서 “어떡하겠어?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라고 가혹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야호 님께서는 한없이 얕은 인간의 마음 속을 굳이 들여다보시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예측 가능한 행동을 구경하시는 것보다, 예측 불가능한 돌발 행동이 주는 당혹감을 즐기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광기어린 순종은 바로 그런 전형성을 크게 넘어서는, 주님께는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반전이었습니다.
“어라? 시킨다고 저걸 정말 하네?”
그러자 야호 님께서는 선을 살짝 넘겨보기로 하셨습니다.
“네 아들을 번제물로 바쳐라”
그러자 아브라함은 살짝 눈이 돈 상태가 되어 정말로 아들에게 칼을 가져다 대려 했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당황하시면서,
“아니다. 그만하자. 네 복종심 충분히 알았다.”라고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런 캐릭터라면 틀림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재미있게 풀어갈 수 있을 거라 확신하셨습니다.
야호 님께서는 또다른 후보였던 욥도 시험하셨습니다. 당신의 충실한 종 사탄을 시켜서 그의 모든 재산을 빼앗고 하인과 자녀들을 모두 살해해 보신 겁니다. 그리고 그에게 병까지 주셨습니다. 욥은 자신의 처지에 절규하고 주님께 의문을 표하면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욥이 자신의 고난의 원인에 대해서 주님께 던진 질문에 대해 야호 님께서는 “너를 어느 정도까기 괴롭혀도 네가 신앙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알고 싶었어.”라고 사탄과의 대화에서 드러내셨던 본심을 그에게 차마 대답할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야호 님께서는 욥에게 “꼬우면 네가 신 하든가!”라고 윽박을 지르시다가 슬그머니 그에게 빼앗아 간 것들을 두 배로 돌려주셨습니다.
애초에 신이라는 존재는 어떤 규칙을 따를 필요도 없고 피조물에게 해명을 해야할 이유도 없는 절대자였다는 점을 욥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욥은 빼앗긴 재산의 2배와 새로운 자녀 10명을 받았습니다. 그가 사랑했던 옛 자녀들 10명은 누구보다 독실했지만 끝내 ‘사망의 권세’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욥의 후손들은 결국 주님으로부터 떠나버렸습니다. 지나친 신앙심은 신의 관심을 끌어 예상하지 못한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는 선조의 사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야호 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 서자 이스마엘, 이삭의 아들 에서는 버리시고, 에서로부터 이삭의 장자권을 가로챈 야곱의 후손들만 컨트롤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던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확실히 주님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만족스러운 종들이었습니다. 장기적인 재미를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고난으로부터 벗어나는 서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야호 님께서는 야곱의 아들들을 이집트로 보내셨습니다.
400년동안 야곱의 후손들이 이집트인들로부터 고통을 당하자 야호 님께서는 드디어 때가 왔다고 판단하고 모세를 보내서 그들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키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집트가 히브리인을 순순히 풀어주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집을 부리는 파라오를 모시고 있는 불쌍한 이집트인들을 대상로 각종 기행들을 즐겁게 벌이시면서 히브리인들을 가나안으로 빼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내쫒고 히브리인이 정착하게 하셨습니다.
이때 이집트인들의 장자 살해나 가나안 원주민들의 갓난아기까지도 죽여버리는, 천인공노할만한 성경 속 명장면들이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바다도 가르고 해와 달의 운행도 정지시키는 이벤트들을 벌이기까지 하시면서 히브리인들을 포함한 다양한 민족들의 피로 목욕하며 천지 창조 이후 최고의 재미를 만끽하셨습니다. 다만 몇몇 학살에서 다행히 순결을 지킨 처녀들만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야호 님께서 누구를 진멸에서 제외하시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자매님들께서는 더욱 철저히 순결을 유지하시길 권면합니다.
야호 님께서 비록 재미를 위해 약한 민족을 선택하셨지만 멸망해버리면 그것 역시 즐거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야호 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들을 단단하게 묶어줄 율법을 내려주셨습니다. 율법이 없다면 안그래도 약한데다가 12지파로 나눠지기까지 했던 이스라엘 민족은 쉽게 와해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야호 님께서 내려준 율법은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운 것이었습니다. 마치 수산물 운반용 수조 안에 상어 한 마리를 넣어서 다른 생선들이 긴장을 풀지 못하게 해서 전체 생존률을 높이는 것과 같은 기능을 했습니다.
그리고 야호 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편안해지면 다른 신을 믿고, 고난을 주면 신앙이 단단해지는 패턴을 파악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지속적으로 고난을 주고 몇몇 예언자들을 골라서 구원에 대한 계시를 종종 내려주셨습니다. 애초에 몸이 편하면 구원을 하든말든 별 관심이 가지려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호 님께서는 그렇게 인간을 구원에 집착하게 하여 단지 찬양만 하는 단편적인 존재보다 한층 흥미롭게 만들어서 그들을 관찰하셨습니다.
* 야호 님을 직접 영접했던 사람들의 목소리
지금껏 야호 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이유와 초창기 인류 역사에 대해 다루어 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야호 님과 대면했던 초기 인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아래에 제시된 내용은 우리 파한교에서 외경으로 분류한 셋(seth)기와 여미마기의 일부를 문학적 필치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저의 긴 편지를 읽느라 피로하실 성도님들께서는 쉬어가는 기분으로 편안하게 감상해 주시길 바랍니다.
1) 하와의 고백
왜 선악과를 먹어서 이런 말썽을 일으켰느냐고요? 저는 공허했어요. 저의 삶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아담의 즐거움을 위한 도구였을까요? 하느님의 창작욕을 충족시킨 인형이었을까요? 맨날 똑같은 일만 반복되는 에덴동산이 편하긴 했어요. 하지만 제가 얼마나 오래 전부터 그 곳에서 지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아요. 저는 그게 영겁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그런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삶이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된다는 게 숨이 막혔어요. 그런데 하느님이 선악과를 가리키시며 말씀하셨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라고요.
저는 솔깃했어요.
‘죽는다고? 바라던 바네. 그리고 나 뿐만 아니라 아담도 이런 삶에서 해방시켜주자.’
하지만 저는 당장 그러질 못했어요. 애정을 받으면서도 죽음을 갈구하는 제 마음을 알면 하느님이 얼마나 상심하셨을까요? 저는 그 삶이 지겹고 허무했지만 그래도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지금도 제 마음은 변함이 없어요. 그래서 선악과를 차마 먹지 못했어요. 그러던 어느날 뱀이 나타났어요. 뱀은 저를 유혹했죠. 뱀은 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알게 되지만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고맙게도 저에게는 좋은 핑곗거리가 생긴 거였어요. 비록 그때는 지금보단 순진했지만 그래도 저는 하느님의 모습을 본따서 만들어진 하느님의 딸 같은 존재예요. 미물인 뱀이 하는 얕은 거짓말 따위에 순순히 넘어갈 리 없잖아요? 저는 당연히 뱀보단 하느님을 믿었어요. 반드시 죽을 것이었죠. 그러나 저는 그깟 뱀의 유혹 따위에 넘어가는 어리석은 여자인 척 하면서 선악과를 먹고 아담에게도 먹였어요. 그이의 공허한 눈빛을 보니 그도 내 마음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선악과를 먹고 나니 영생이 사라졌다는 점이 직감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리고 성적인 욕구가 생겨났죠. 죽는 존재는 후손을 만들기 때문인가 봐요. 그이의 몸이 전과는 확실히 다르게 보였는데 처음 경험해 본 이질적이고 설레면서 웬지 모르게 좋은 느낌이었어요. 가슴이 콩닥 콩닥 거렸어요. 마음이 가슴에 있다는 걸 알게 된 날이었죠. 아담 역시 저와 마찬가지였어요. 다만 그이는 저와는 달리 자신의 신체에 눈에 확 띄는 특별한 변화 때문에 어쩔 줄 몰라했어요. 무화과 잎으로 가려보겠다고 혼자서 허둥대는 모습이 좀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도움을 줬죠. 그렇게 저도 같이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서 입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던 날이었고 그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미소가 지어져요. 그런데 그 큰 게 겨우 무화과 잎으로 가려지겠어요? 하느님께 당연히 들켰죠. 그러더니 죽기 위해서 그걸 먹었다는 제 속내를 모르신 척하고 눈감아 주신 건지 정말로 모르셨던 건지 다행히 하느님은 슬퍼하시기보다는 화를 내시더군요. 그 분에게 슬픔을 드린 게 아니라서 지금도 저는 그 때의 제 결정에 만족해요.
아담은 그때 하느님께 이렇게 대답하며 제 탓으로 돌렸어요.
“하느님께서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좀 섭섭했지만 그를 이해해요. 딱히 틀린말은 아니었으니까요. 나중에 물어보니 그이는 저처럼 충분한 각오를 해왔던 건 아니었다고 하더라고요. 인자하신 모습만 보이시던 하느님이 화내시는 모습을 처음 보니 온몸이 얼어붙었고 아무 말이나 하게 되었고 그냥 그 순간에서 도망치고 싶었다고요. 뱀도 저희와 같이 벌을 받았어요. 거짓인 걸 뻔히 다 알면서도 거절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라 약간 미안하기는 했지만 자업자득이죠. 어쨌든 뱀은 저를 속여서 곤란에 빠뜨리려고 한 거잖아요. 나중에 뱀에게 정확한 사정을 말해주니 뱀은 저를 더 미워하게 되었어요. 저도 뱀이 싫어요.
그건 그렇고 선악과를 먹으면 곧 죽는 줄 알았는데 그 후에도 꽤 오래, 몇백 년을 더 살게 된다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쫒겨나게 될 줄도 몰랐죠. 기대하지 않았던 변화가 두려웠지만 그래도 홀가분했어요. 그렇게 저희 부부는 에덴동산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를 얻고 그 대가인 시련을 감당하게 되었어요.
시련은 예상했던것 보다 훨씬 가혹했었죠. 그 중에서 가장 큰 시련은 큰 아이가 자기 동생을 죽이고서 우리 곁을 떠나버린 일이었어요. 차라리 의미없던 과거의 삶을 영원히 연명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라는 후회가 들 정도였었죠. 그 날만큼은 하느님께서도 직접 죄인인 저를 위로해주시며 또다른 아이를 가지게 해 주셨어요.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생길지 제 아이가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솔직히 두려워요.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아요. 저희는 어떻게든 살아갈테고 하느님이 저희를 버리시진 않을테니까.
2) 욥의 솔직한 심경
나는 하느님을 경배하네. 그분은 나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가신 후에 2배로 되돌려주셨지. 정말 은혜로우신 분이야. 내 딸 사라, 요안나, 마리아를 압사시키시고서 훨씬 더 예쁜 여미마, 긋시아, 게렌합북으로 보상해주셨지. 나는 많은 재산과 예쁜 딸들이 생겨서 너무 기쁘다네.
젖니가 빠진 걸 재미있어하며 혀를 내밀면서 자기 아랫니가 빨갛게 됐다고 웃던 내 막내딸 마리아의 마지막 모습이 갑자기 생각나는군. 그 아이는 무너진 나무 기둥에 깔려서 컥컥 소리를 내고 울면서 내가 구해주길 기다린것 같았어. 나는 최대한 빨리 달려갔지만 도착했을 땐 이미 늦었었지. 마리아는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렸던지 눈물흘린 자국만 보이고 더이상 눈물을 흘리지는 못하더군.
나를 보면서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는데 그 아이 목이 짓눌렸는지 그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어. 입술 모양을 봐서는 아마도 ”아빠 살려주세요” 였던것 같아. 너무 늦게 도착한 나와 내 하인은 힘을 합쳐서 죽기 살기로 기둥을 들어올렸어. 그 때 다친 내 어깨 힘줄은 아직도 회복되질 않고 있지. 그리고 의사에게 가려고 마리아를 들쳐 업었어.
하지만 그 아이는 입으로 피를 토해내더니 숨을 쉬지 않았어. 차라리 내가 죽는게 나을거라고 느꼈지. 나는 마리아가 흘린 피가 잔뜩 묻은 내 옷을 찢으며 재를 덮어쓰고 짐승처럼 비명을 질렀어. 사라는 시신 자체를 찾지 못했고 요안나는 머리가 함몰된 걸 보니 다행히 즉사해서 고통 없이 간 것 같더군.
하지만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야. 나는 여미마, 긋시아, 게렌합북을 받았잖아. 하하하하하.
내가 이렇게 하느님이 아이들을 새로 주신 것에 대해 기뻐하고 주기적으로 감사를 표해야 먼저 간 내 딸 사라, 요안나, 마리아를 하느님이 더 이상 괴롭히지 않고 자애롭게 보살펴주실거야. 그리고 나는 아이들에게 하느님을 반드시 충실하게 경배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어. 너희의 신앙심이 하느님의 의심을 살 정도로 애매하다면 너희는 언제든지 너희의 죽은 언니, 오빠, 형, 누나들 같이 하느님이 하시는 시험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지.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재빨리 모래 바닥 위에 이런 글자들을 급하게 휘갈겨 쓴 후에 곧바로 문질러서 지워버린다)
“사실은 이런 방법을 써서 그 미친 신으로부터 도망치라고 가르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