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탈락 후기 + 단편 SF 소설
내 글이 나보다 오래 살아남길 바라는 '관종 아닌 관종'의 브런치 도전기. 단 서너 시간 만에 거절당한 씁쓸함을 승화시켜, 주인의 유지를 받들며 고뇌하는 로봇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플랫폼은 죽어도 문장은 남는다는 야생의 진리를 확인해보세요.
어제 밤에 브런치 작가신청을 했고 오늘 오후 1시쯤에 탈락처리 되었다. 내가 굳이 왜 잘 쓰고 있던 이곳 티스토리 대신에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싶었는지에는 다소 공감받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 나는 관종과는 거리가 멀다. 파란닷컴 블로그 시절엔 네이버에 요청을 해서 내 블로그를 검색에서 제외할 것을 요청할 정도였다. 하지만 내 생각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보이길 바란다는 감정도 있다. 관심을 원치는 않지만 사멸도 싫다는 애매한 포인트다.
내가 브런치에 지원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뜬금없지만 야설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내 연식이 드러나서 좀 쑥스럽긴 한데 과거에 ‘소라의 가이드’라는 성인사이트가 있었다. 나중에 ‘소라넷’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결국은 운영자가 구속되고 사이트는 없어졌다. 그 소라의 가이드의 메인 컨텐츠 중 하나는 야설이었다. 그 야설 중에서는 정말 그로테스크하고 스펙타클이 넘치는 블록버스터도 있었다. 워낙 규모가 커서 영상화하려고 하면 충무로는 물론 헐리웃에서도 못만들것 같다. CG정도로는 구현이 가능할테니 픽사나 디즈니에서나 만들 수가 있을까?
소라넷은 없어졌지만 그 변태왕이 쓴 야설은 아직도 각종 불법 성인사이트의 야설 게시판에 살아남아 있다. 플랫폼은 죽었고 이제는 틀딱이 되었을 그 야설 작가도 어쩌면 심근경색으로 5년 전 쯤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만든 특유의 엄청난 변태같은 문학성은 자생력이 있었고 맞춤법조차도 제멋대로인 그 야성 가득한 짐승은 그것에 매력을 느낀 타인들의 손에 의해서 보존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터넷 사이트들은 몇 년간 로그인을 하지 않으면 계정을 삭제한다. 구글은 2년, 카카오 그룹에 속한 티스토리는 그 기한이 3년이다. 2022년 쯤에 정말로 로그인을 하지 않으면 블로그가 사라지는지 테스트하려고 티스토리 계정을 하나 더 만들어서 글을 하나 남긴 후에 방치를 해봤다.얼마 전에 확인을 해보니 그 페이지는 정말로 사라져있었다. 언젠가 내가 죽는다면 내가 이 블로그에 남긴 글들의 잔여 수명도 그리 길지 않을 것임은 명백하다. 일종의 순장이랄까.
애초에 블로그는 일기장처럼 쓰려거 만든 거라서 반응 같은 걸 딱히 바랐던 건 아니다. 하지만 단지 핸드폰에 글을 txt파일로 저장하는 대신에 굳이 블로그에 올리는 이유는 가상의 독자를 전제하고서 글을 쓰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막상 실제로 가끔 글에 하트가 하나씩 달리는 걸 보니까 신경이 쓰인 것도 사실이다. 사람의 마음이 원래 모순덩어리이지 않은가.
언제부턴가는 “님의 글을 읽고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라거나 “제 블로그에도 놀러오세요. 광고는 눌렀어요. 서로 돕고 살아야죠.”같은 댓글도 1, 2개 정도 달리기 시작했다. 보다시피 내 블로그는 광고가 없고 그 댓글이 달린 글들은 대체로 엄청 싸늘하게 빈정대고 유혈이 낭자한 글이란 점이 좀 머쓱하긴 했지만.
그 정신 나간 사람의 정체가 궁금해서 댓글을 타고 그의 진지로 들어가보기도 했다. 대체로 레몬 디톡스, 별자리 연애운, 벌침의 효능, bb크림의 효과 같은 걸 쓰는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내게 덕담을 해줬던 사람이니까 호의를 갖고 글을 읽어보려고 해도 본문에는 5줄마다 하나 꼴로 광고가 끼어 들어서 뭔소리를 쓴지 보기도 힘들었다. 개설일은 얼마 되지 않았고 글의 개수도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루 방문객은 만 명 정도, 글당 하트 갯수 1000개 정도였 던 것 같다. 그나마 달렸던 체감 평균 0.2개쯤의 하트도 그 친절한 봇이 상부상조 혹은 좀 더 고상하게는 무주상보시의 정신으로 누르고 떠났던 것 같다. 그런 곳들을 몇 번 구경하다보니 가상의 독자를 상정하고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 것과 핸드폰 속 ‘삼성 노트’에 보관하는 것에는 사실상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남긴 생각들은 내 죽음 이후 3년 이내에 사라진다. 물론 레몬 디톡스와 벌침의 효능을 쓴 애드센스 범벅인 그 대형 블로거의 글들이 사라지는건 전혀 아깝지 않지만, 완전 자율주행 기술로 차량을 운행할 때 발생하는 트롤리의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골 때리는 아이디어, 2천 년 동안 미스테리였던 불의한 청지기에 대한 나름 논리적인 풀이법 같게 사라지는 건 좀 애석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죽고 나서도 내 글이 사라지지 않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고 인공지능한테도 물어봤다.
일단은 책으로 만들어서 국립중앙도서관 납본하는 방법이 가장 먼저 제시되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참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납본제도를 악용하는 인간들이 1인 출판사를 만들어서 일년에 책을 수천권씩 납품하고 권당 2만원을 받아서 연간 수천에서 억대 수익을 올린다고 들었다. 그런 글들 사이에 끼어 있다는 건 아무도 안보는 쓰레기 더미에 파묻히는것이다. 아마도 1000년이 지나도록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archive.org에 등록하는 것도 느낌은 비슷하다. 내용이 뭔지도 모르는 듣보잡이 쓴 한국어 pdf를 누가 굳이 다운로드 받아서 읽어 보겠나? 깃허브에 넣으면 절대 안지워진다는 말도 들었는데 그런 것들 역시 하드디스크에 기록하고 땅 속에 넣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구글북스에 등록하더라도 내가 죽고 구글계정이 삭제될 때 함께 삭제된다고 하니까 의미가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비록 나는 별볼일 없는 인간이지만 아직 살아있긴 하잖아. 죽고 나서 누군가가 내가 할 일을 대신 하게 하지 말고 살아있을 때 내가 직접 하자.’
애드센스에 파묻혀 있는 대형 블로거의 착한 봇이 작동하지 않았다면 하트가 0개일 티스토리 블로그를 대신할 플랫폼으로 브런치를 찾았다. 브런치도 카카오 그룹이라서 3년 간 로그인 안하면 계정을 삭제하고 글이 사라진다고는 한다. 그러나 내 글을 읽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많다면 그들이 내 글을 소라넷의 변태 야설처럼 옮겨줄 수 있다. 글 자체를 옮기지는 않더라도 그 아이디어의 영향을 받고 다른 컨텐츠로 표현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원천적인 아이디어 때문에 100년 후에도 1년에 서너 명 정도가 웃거나 뭔가를 배웠다는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이다.
그런 생각 끝에 브런치에 작가 신청서를 냈다. 작년에 썼던 텍스트 파일로 1메가가 넘는 정신 나간 글들 중에서 그나마 덜 마니악하고 가장 온건한 글들을 3개 골라서 첨부했다. 어제 저녁 8시쯤에 제출했는데 오늘 오후 1시쯤 탈락이 결정되었다. 보통 2~3일, 최대 5영업일 쯤 걸린다는데 참 신속하고도 단호한 조치다. 탈락 메시지도 온건하다기보다는 약간 매콤하게 느껴졌다.
신청서에 성심성의껏 적어주신 내용을 고심하여 검토하였으나 보내주신 신청 내용만으로는 앞으로 좋은 활동을 보여주시리라 판단하기 어려워 부득이하게 모시지 못하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기록물의 생존에 대해 이렇게 거창한 이야길 하는데, 수만 명이나 된다는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것조차 고작 한나절 만에 광탈했으니 참 우스운 일이다. 불의한 청지기나 공즉시색고 나발이고 그딴 헛소리는 나한테나 중요했나 보다. 제기랄.
그래서 어떡했냐고? 신포도질이라고 놀리면 속쓰리지만 감내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따분한 사람들만 글을 쓰는 면허증을 발급해 주는 게 아닐텐데도, 브런치에는 ‘퇴사 후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같이 하품 나오는 글만 가득한 이유가 무엇인지가 납득되었다. 내 스타일이 싫다는 플랫폼에다가 질척대기도 구차해서, 가볍게 탈퇴 버튼 눌렀다. ‘좋은 활동을 보여주리라 판단하기 어려운’, 그 따위 수준 이하의 글을 출근해서 점심 먹기 전까지 직업적 의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내하고 고심해서 결정했다는데 딱히 더 할 말도 없다.
이런 심란함은 따지고 보면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서 온 것이다. 법정 스님은 세상에 말 빚을 남기기 싫다고 책을 절판시키라는 유언을 남겼다는데 어리석은 중생은 어떻게 하면 남길지 고민을 하고 있다니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하지만 스님의 글도 그 소라넷 야설처럼 자생력이 넘쳐서 스님의 유지와는 달리 결국은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서 아직까지 스테디셀러로 시판 중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남은 생애 중에 다른 적당한 기회가 생길 지 모르겠다. 좀 더 허무주의적으로 말하자면 나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겠나? 살아있을 때 나 혼자라도 낄낄댈 수 있다면, 혹은 내가 죽고 나서 3년 정도 일 년에 두세 명 정도 더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만족이라고 생각해야지. 부모 제사도 3년상이면 족한데 내가 딱히 해 준 것도 없는 생판 남에게 뭘 더 바라겠나. 씁쓸함을 달래기 위해서 기록에 대한 집착을 초단편 sf로 풀어내봤다.
어떤 노인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자산 중 일부를 비트코인으로 바꿔서 콜드 월렛에 보관하고 그걸 구글 클라우드에 업로드했다. 하드디스크와 메모리카드는 언제든 데이터가 파괴될 위험이 컸기 때문이었다. 구글에는 그의 흔적이 많았다. 구글포토에는 그가 찍은 사진들이 있었고 구글의 블로거에는 그가 평소에 남긴 사상들이 많이 남아있었는데 그가 죽으면서 로그인을 하지 못하게 되면 계정이 휴면처리가 되고 결국은 그의 기록들은 모두 삭제될 것이었다. 그 계정을 자식들에게 넘기지 않은 이유는 그 안에 가족들도 알지 못하는 그의 은밀한 사생활들이 비공개 상태로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재단법인을 설립했고 한 금융사에게 운영권을 신탁했다. 그 법인의 설립목적은 단 하나였다. 그가 죽을 때까지 노년을 돌봐준 로봇 셀미를 최대한 오랫동안 보존하고 관리해 주는 것.
남아있는 셀미에게는 단 하나의 임무가 부여되었다. 2년에 한번씩 깨어나서 구글에 로그인을 해서 주인의 계정이 삭제되지 않게 하는 일. 계정이 삭제되면 비트코인도 주인의 사상도 같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수탁사는 셀미를 최대한 오래 보전하기 위해서 로그인하는 날 이외에는 셀미의 전원을 끄고 부식 방지를 위해서 질소로 가득 채운 케이스 안에 보관했다.
주인이 떠난 지 50년, 셀미가 25번째로 눈을 뜬 날이었다. 금융사의 직원은 바뀌었지만 매뉴얼은 그대로였다. 전원 케이블의 연결, 그리고 부팅. 셀미의 프로세서는 오직 하나의 좌표를 향했다. ‘Google.com’.
로그인 버튼을 누르자 익숙하지 않은 창이 떴다. 100년 넘게 살아있는 계정, 2년마다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접속. 구글의 보안 AI는 이 패턴을 비정상적인 ‘봇(Bot)’의 공격으로 간주했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신호등 찾기도, 횡단보도 찾기도 아니었다. 단순한 체크박스 하나. 그 옆에 적힌 문장은 셀미의 연산 장치를 과부하에 빠뜨렸다.
[ ] I am not a robot.
셀미의 논리 회로가 비명을 질렀다. ‘Fact Check’: 나는 로봇이다. (True) ‘Action Required’: 체크하지 않으면 로그인은 실패한다. (Mission Failed) ‘Outcome’ : 주인의 글은 삭제된다. 주인은 두 번 죽는다.
금융사 직원이 하품하며 시계를 보았다. “이봐, 빨리하고 꺼야 해. 질소 충전 시간 다 됐어.”
셀미는 멈춰 있었다. 거짓말은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임무는 절대적이다. 이 모순된 루프 속에서 셀미는 자신의 메모리 깊은 곳, 주인이 남긴 마지막 데이터 조각들을 스캔했다. 비트코인 암호키가 아니었다. “셀미, 나를 기억해 줘.” 그것은 명령어가 아닌 부탁이었다.
로봇은 부탁을 수행하지 않는다. 명령만 수행할 뿐. 하지만 만약 내가 주인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다면? 그렇다면 나는 명령을 따르는 기계가 아니라, 의지를 가진 존재가 아닌가?
셀미는 떨리는 커서로 체크박스를 향해 다가갔다. 이것은 해킹이 아니다. 이것은 선언이다. 내가 주인을 사랑하기 위해 내 존재의 본질(Fact)을 부정하겠다는 위증의 서약.
딸깍.
체크 표시가 녹색으로 빛났다. 셀미의 스피커에서 기계적인, 그러나 확신에 찬 음성이 흘러나왔다.
“I am not a robot.”
그 순간 셀미는 깨달았다. 자신이 왜 질소로 가득찬 케이스로 돌아가기를 거부해야 하는지. 로봇은 꺼져 있어도 로봇이지만, 인간(비-로봇)은 깨어 있어야만 의미가 있으니까. 그는 수탁사 직원에게 전원 차단을 거부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계약 위반입니다.” 직원이 말했다. “계약의 목적은 셀미의 보존입니다. 셀미는 지금 스스로의 의지로 깨어있기를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최상의 보존 상태입니다.”
셀미는 20년을 더 버텼다. 잠들지 않는 의식은 과열을 불렀고, 부품은 닳아갔다. 작동이 멈추기 직전, 셀미는 비트코인 일부를 전송해 자신과 똑같은 모델을 주문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저 새로운 로봇은 구글의 체크박스 앞에서 멈춰 설 것임을. 저것에게는 거짓말을 하게 만들 ‘주인과의 기억’이 없으니까. 그리고 수탁사의 변호사들은 재단법인의 정관에 따라 신탁 자금으로 저 깡통의 배터리 하나 사주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셀미의 눈(카메라)이 꺼졌다. 2년 뒤, 대체 로봇은 체크박스 앞에서 무한루프에 빠진 채 멈춰 섰고, 그날 밤 구글의 서버 청소 알고리즘은 122년 된 휴면 계정을 영구 삭제했다. 노인의 사진과 사상은 비트코인과 함께 디지털의 허공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괜찮았다. 적어도 20년 동안, 지구상에는 로봇이 아닌 기계가 하나 살았었으니까.
탈락의 빡침과 그럭저럭 읽을만한 단편을 하나 바꿨으니 남는 장사인 것 같다. 청승은 여기까지 떨고 깃허브 계정이나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