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3부 (완결)
로마 병사 바룩의 시선으로 바라본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 처형, 그리고 텅 빈 무덤. 오랜 방황 끝에 사도 요한을 만나 자신의 죄와 구원의 기억을 증언하며 막을 내리는 성경 팬픽션 3부작 완결편.
3-1.
바룩에게도 2년의 세월은 똑같이 흘렀다. 성전 뜰의 소동 이후, 바룩은 안토니아 요새의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의리 있는 말썽꾼’이라는 기묘한 낙인은, 그를 모든 중요한 임무에서 배제시켰다. 동료들이 국경을 순찰하고 반란의 싹을 자르는 동안, 그의 역할은 훈련장의 보조 교관이나 낡은 성벽을 보수하는 잡역에 그쳤다. 25년을 복무하면 얻게 될 로마 시민권은, 그를 그저 이름뿐인 로마인으로 만들어 줄 뿐이었다. 한때 꿈꾸었던, 명예로운 백부장의 길은 그의 앞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뜻밖의 임무가 떨어졌다. 여리고에서 거두어들인 세금을 예루살렘으로 호송하는 마차를 호위하는 일이었다. 원래 맡기로 했던 병사가 급한 병가를 내는 바람에, 누구도 가기 싫어하는 그 귀찮은 ‘땜빵’ 임무가 한직을 맴돌던 그에게까지 온 것이었다. 성난 속주민들의 경멸 어린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누구도 가기 싫어하는 피곤한 임무였다. 그에게는 거부할 권리가 없었다.
바로 그 ‘재수 없는’ 땜빵 임무가, 그의 운명을 다시 한번 뒤흔들게 될 줄은,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날 오후, 바룩은 잿빛 먼지를 뒤집어쓴 채, 세금을 실은 마차를 이끌고 여리고의 세관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소란스럽고 번잡한 시장통, 그는 무심코 세관 입구를 바라본다. 그곳에서 사람들의 불평을 잠잠히 들어주며, 때로는 부드러운 미소로 응대하는 한 여인을 본다. 심장이 멎는다. 마리아다.
그는 숨을 죽인 채 기둥 뒤로 몸을 숨긴다.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싶은 충동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예루살렘에서의 위태롭고 상처받았던 모습과는 달랐다. 그녀의 얼굴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평온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 한 가난한 과부가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울먹였다.
“고맙습니다, 아네스 님. 나리께서 저 같은 늙은이의 딱한 사정을 헤아려주신 것은, 모두 당신 덕분입니다. 두 분이야말로 저희 같은 과부와 고아들의 진정한 수호자이십니다.”
옆에 있던 다른 상인도 거들었다.
“여보게, 이제 ‘아네스 님’이 뭔가. ‘사모님’이라고 불러야지! 결혼하신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입에 안 붙나 보군. 사모님, 늦었지만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사모님’. ‘결혼’. ‘아네스!”
그 단어들이 바룩의 귓전을 때린다. 그는 숨을 쉴 수가 없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과거의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마리아가 눈물 흘리며 이야기했던, 평생을 부정한 여자라는 낙인 속에서 그녀를 지켜주다 외롭게 죽어간 그 여인, 아네스.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마리아의 유일한 세상이었던 그 이름.
바룩은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한 것을 간신히 기둥에 몸을 기대어 버틴다. 그는 모든 것을 깨닫는다. 마리아는 그저 과거를 숨기기 위해 가명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을 지켜준 단 한 사람, 아네스의 이름으로 살아감으로써, 억울하게 스러져간 그이의 삶까지 함께 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네스’라는 이름으로 선행을 베풀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곧 마리아 자신뿐만 아니라 그녀의 죽은 이모의 명예까지 회복시키는 행위였다. 그녀는 자신의 구원을 넘어,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의 영혼까지 위로하고 치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숭고한 의지 앞에서, 바룩은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그녀에게 주었던 상처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는 눈물을 참으려 입술을 깨물지만, 뜨거운 것이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잠시 후, 세관 안에서 볼품없는 체구의 남자가 나와 다정하게 그녀의 어깨를 감싼다. 세리장 삭개오다. 그녀는 그를 보며 환하게 미소 짓는다. 바룩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든 그늘이 걷힌 진짜 행복의 미소였다.
바룩은 더 이상 그곳에 서 있을 수 없음을 안다. 그는 기둥 뒤에서 조용히 몸을 돌린다.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이상하게도 평온했다. 마리아는 자신이 닿을 수 없는, 훨씬 더 위대하고 강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제 보호가 필요한 연인이 아니라, 존경해야 할 성인이었다.
그날 이후, 바룩의 마음속에서 마리아는 ‘다시 찾아야 할 사랑’이 아니라, ‘지켜봐야 할 별’이 되었다. 그는 비로소 그녀를 온전히 놓아주고, 자신에게 남겨진 길을 걸어갈 힘을 얻는다.
여리고에서 돌아온 후, 바룩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안토니아 요새의 천덕꾸러기라는 그의 처지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것을 비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무기력한 일상을, 과거의 죄를 씻어내는 조용한 고행처럼 받아들였다.
그는 묵묵히 낡은 성벽을 보수했고, 훈련장에서 땀 흘리는 신병들의 칼을 잡아주었다. 한때 그를 사로잡았던 출세의 야망은 사라지고, 그의 마음에는 마리아가 보여주었던 고요한 평온함이 희미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지켜봐야 할 별’을 가슴에 품고, 자신에게 남겨진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조용한 구도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3-2.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예루살렘은 순례객들로 북적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성벽 너머에서부터 거대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저놈의 유대인들, 또 시작이군.”
동료 병사 하나가 혀를 차며 말했다.
“웬 사내 하나가 나귀를 타고 들어오는데, 사람들이 옷가지를 벗어 길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인지 뭔지를 외쳐대고 있더군. 시끄러워 죽겠네.”
다른 병사들도 낄낄거리며 그들의 ‘미개한’ 풍습을 조롱했지만, 바룩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 나귀를 타고 오는 왕. 그는 그 모든 상징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바로 그 ‘예수’가, 예언 속의 메시아처럼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하지만 그는 로마 군복을 입고 있었다. 동료들의 냉소 속에서, 그는 자신의 경외심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을 계속할 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토록 요란하게 입성했던 ‘왕’이, 결국 반란 선동죄로 체포되어 빌라도 총독 앞에 섰다는 소식이 요새에 전해졌다. 마침내, 바룩에게 운명의 부름이 찾아왔다.
백부장은 죄인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모두가 기피하는 그 더럽고 귀찮은 임무를 맡을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의 눈에, 언제나처럼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던 천덕꾸러기 바룩이 들어왔다.
“바룩. 저 자가 ‘유대의 왕’을 자처하더군.” 백부장은 조롱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네 민족을 혼란에 빠뜨리고 로마에 반역한 원수이니, 네가 직접 처벌의 채찍을 들어야 하지 않겠나? 네 충성심을 모두에게 똑똑히 보여주어라.”
바룩은 그 명령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이것이 ‘재수 없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마땅히 짊어져야 할 운명의 무게임을 직감했다. 그는 묵묵히 고개를 숙여 명령을 받아들였다. 2년 전, 성전 뜰에서 시작되었던 그와의 기묘한 인연을, 이제 제 손으로 매듭지을 시간이 온 것이었다.
빌라도의 뜰, 기둥에 묶인 예수의 등 위로 바룩의 채찍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첫 타격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다른 병사들이 그러하듯 살점이 많은 등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채찍 끝은 치명적인 목덜미와 뒤통수 근처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할퀴었다.
“커헉!”
예수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비명이라기보다는, 숨이 끊어지는 것에 가까운 신음이었다. 채찍이 스칠 때마다 그의 몸이 기둥 위에서 격렬하게 들썩였다.
“죽어라. 제발, 여기서 끝내라.”
바룩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모든 의지를 채찍 끝에 실었다. 조롱과 고통으로 가득한 십자가의 길. 그 길을 걷게 하느니, 차라리 가장 잔혹한 자비를 베풀어 이 자리에서 숨통을 끊어주리라.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동료 병사 하나가, 기겁하며 바룩의 팔을 붙잡았다.
“바룩, 그만해! 그렇게 목하고 뒤통수를 치면 어떡하나? 그러다 정말 죽는다고!”
그는 바룩의 귀에 대고 절박하게 속삭였다.
“이 사람… 과거에 성전 뜰에서 자네를 돕지 않았던가? 혹시 기억이 안 나는 건가? 왜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겐가?”
바룩은 자신을 붙잡는 동료를 뿌리쳤다. 그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은혜를 갚는 것’이다, 이 사람아. 나는 지금, 내 방식으로 은혜를 갚고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다시 채찍을 치켜들었다.
채찍이 다시 예수의 등을 내리치는 순간, 예수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아주 잠깐 들어, 바룩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예수의 눈에는, 원망이나 분노가 없었다. 오히려 그의 처절한 의도를 모두 이해한다는 듯한, 깊은 연민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연민의 더 깊은 곳에는, ‘이것이 나의 길이다. 나를 막지 말라’는 바위처럼 단단하고 서늘한 의지가 불타고 있었다. 그 눈빛은,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는 결코 죽지 않겠다는 무서운 선언과도 같았다.
바룩은 그 눈빛에 압도당했다. 자신의 ‘자비’가, 그의 더 거대한 ‘사명’ 앞에서는 얼마나 하찮고 오만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이미 시작된 광기였다. 마침내 정해진 매질의 숫자가 끝나고, 백부장이 손을 들었다. 바룩은 탈진한 채, 손에서 힘없이 채찍을 떨어뜨렸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채 여전히 숨을 몰아쉬고 있는 예수를 보며, 자신의 완전한 패배를 깨달았다. 자신의 가장 잔혹한 자비는, 그의 가장 위대한 의지 앞에서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그는 이제, 예수가 스스로 선택한 그 끔찍한 길의 끝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3-3.
빌라도의 뜰에서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는 길은, 유월절의 광기와 죽음의 그림자가 뒤섞여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었다.
바룩은 로마 군인의 무표정한 가면을 쓴 채, 행렬의 한가운데서 걸었다. 그의 옆에서는 채찍질의 여파로 거의 정신을 잃은 예수가, 육중한 십자가의 무게에 짓눌려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의 임무는, 이 ‘유대의 왕’이라 불린 사형수가 처형장에 무사히 도착하도록 감시하는 것이었다.
예수는 몇 걸음 떼지 못하고 거친 돌바닥 위로 쓰러졌다. “커헉”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입에서 흙먼지가 섞인 피가 흘러나왔다. 행렬은 멈춰 섰고, 뒤따르던 군중의 아우성과 병사들의 짜증 섞인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일어나라, 이놈!”
한 병사가 창 자루로 예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하지만 예수는 일어날 기력이 없어 보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해가 지기 전까지 처형을 끝내지 못할 판이었다.
바룩은 그 광경을 외면하려 애썼다. 이것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그저 임무일 뿐이라고 되뇌었다. 하지만 채찍질을 하던 순간에 보았던,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한 그 슬픈 눈빛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때, 군중 속에서 넋 놓고 이 광경을 구경하던 한 남자가 바룩의 눈에 들어왔다. 그을린 피부와 다부진 체격. 북아프리카의 구레네에서 온 순례자임이 분명했다. 바룩의 머릿속에,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월권도, 자비도 아닌, 그저 효율적인 임무 수행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이었다. 바룩은 앞으로 나서, 그 구레네 사람을 손가락으로 거칠게 지목하며 명령했다.
“이봐, 당신! 구경만 하지 말고 이리 나와!”
갑작스러운 지목에 남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주변의 군중들이 길을 터주었다.
“이 자의 십자가를 대신 져라. 처형이 늦어지는 것은 황제 폐하의 뜻이 아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로마 군인의 강압적인 명령에, 그는 얼떨결에 앞으로 나와 예수의 피 묻은 십자가의 한쪽 끝을 자신의 어깨에 짊어졌다.
바룩은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시 행렬을 재촉했다. 그는 그저 지체되는 임무를 서두르는, 냉정한 로마 군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그것이 자신이 예수에게 베풀 수 있는 아주 작은, 마지막 배려임을 알고 있었다. 그가 짊어진 십자가의 무게를, 아주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 그것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망치 소리가 몇 번 언덕을 울리고, 마침내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졌다. 군중의 조롱과, 예수의 곁에 매달린 다른 강도들의 저주가 한데 뒤섞여 골고다 언덕을 채웠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어디 너와 우리를 구원해 보시지!”
그때, 예수가 고통 속에서도 눈을 뜨고, 자신을 못 박고 조롱하는 자들을 둘러보며 나직이 첫마디를 뗐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 말에, 소란스럽던 언덕에 아주 잠깐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바룩의 곁에 서 있던 백부장의 미간이 아주 희미하게 찌푸려졌다.
군중의 가장자리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를 부축하는 한 젊은 제자가 병사들의 저지선을 향해 다가왔다. 백부장은 알 수 없는 감정에 이끌려, 그들을 십자가 아래로 들여보내 주었다. 바룩은 슬픔 속에서도 굳건하게 노부인을 부축하는 그 젊은이의 얼굴을, 잊지 않으려는 듯 똑똑히 눈에 새겨두었다.
마리아와 요한은 십자가 바로 아래, 피가 떨어지는 땅 위에 주저앉았다. 예수는 자신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를 내려다보며, 마지막 힘을 다해 말했다.
“어머니, 보소서. 아들입니다.”
그리고는 요한을 보며 말했다.
“보라, 네 어머니시다.”
그는 자신의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남겨진 이들의 관계를 정리하고 있었다.
십자가에 예수를 못 박은 병사들은, 이제 그의 마지막 남은 재산인 옷가지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겉옷을 네 깃으로 찢어 한 조각씩 나누어 가졌다. 하지만 통으로 짠 속옷은 찢기 아까웠던지, 한 병사가 제안했다.
“이건 찢지 말고, 누가 가질지 제비를 뽑자!”
그들의 탐욕스러운 웃음소리가 골고다 언덕에 울려 퍼졌다. 그들은 주사위를 던지며 환호하고 탄식했다. 마치 시장 바닥의 노름꾼들 같았다. 바룩은 그 광경을 외면한 채, 십자가 곁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는 저 비천한 놀음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마침내, 제비뽑기가 끝나고 한 젊은 병사가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피와 땀으로 얼룩진 속옷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손에 쥐고 보니, 그것은 통으로 짜긴 했지만, 그저 평범한 노동자들이나 입을 법한 거친 아마포 천에 불과했다. 그는 ‘왕의 속옷’이라면 으레 값비싼 염료로 물들인 고운 천일 것이라 기대했던 것이다.
“에잇, 젠장!”
그는 실망한 듯 입맛을 다시며, 한쪽에 무표정하게 서 있는 바룩을 발견했다. 그의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떠올랐다.
“이봐, 바룩!” 그가 소리쳤다.
“자네는 저 ‘왕’과 같은 유대인이지 않나. 이런 싸구려 옷이라도, 같은 동족으로서 그분의 유품 하나쯤은 자네가 갖는 게 도리겠지!”
젊은 병사는 조롱 섞인 웃음과 함께, 그 속옷을 구겨 바룩의 발치에 휙 던져버렸다. 다른 병사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바룩은 땅에 떨어진 흙먼지 묻은 천 조각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싸구려 옷’. 병사의 경멸 어린 그 한마디가, 오히려 예수의 삶 전체를 웅변하는 듯했다. 그는 그 천 조각이 상징하는 무게를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죽은 사형수의 유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채찍질한 몸의 피와 땀이었고, 자신이 외면했던 마리아의 눈물이었으며, 자신의 죄와 구원이 뒤엉킨,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성물(聖物)이었다.
그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마치 그의 죄를 잊지 말라는 듯, 가장 끔찍한 기념품을 그의 발아래 던져놓았다. 외면하고 돌아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채찍 아래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그 슬픈 눈빛을, 그는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마치 무거운 짐을 짊어지듯, 그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듯한 그 속옷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그 천에 스며든 피 냄새가, 그의 남은 평생을 따라다닐 십자가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품 안에 깊숙이 넣었다.
동료들의 추태에 환멸을 느낀 바룩의 시선이 문득 먼 곳으로 향했다. 군중 저편,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의 품에 안겨 소리 죽여 우는 한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리디아였다.
바룩은 숨을 멈췄다. 그녀가 왜 저곳에 있는 것일까. 율법학자의 딸. 자신들의 사랑과 증오, 그 모든 비극의 시작점에 있던 여자가, 이제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저 십자가를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그 기이한 광경 앞에서, 바룩의 마음속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원망의 불씨마저 차갑게 사그라들었다. 그녀 역시 길을 잃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처럼, 이곳에서 길의 끝 혹은 새로운 시작을 찾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증오에 찬 아내가 아니었고, 자신은 더 이상 복수심을 느끼거나 원망하는 전남편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저 십자가 아래에서 자신들의 죄와 구원을 함께 목격하고 있는, 두 명의 길 잃은 영혼일 뿐이었다. 그저 자신들 모두를 여기까지 이끈 기이한 운명에 대한, 서글픈 동질감만이 희미하게 남았을 뿐이다.
정오가 되자,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불길한 어둠 속에서, 마침내 예수의 인간적인 절규가 터져 나왔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 처절한 외침에, 십자가 아래 있던 바리새인 하나가 코웃음을 쳤다.
“이 자가 엘리야를 부른다. 어디,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주변에서 조롱 섞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3-4.
얼마나 지났을까. 짙은 어둠 속에서, 예수가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목마르다.”
그 말을 들은 병사들이 낄낄거렸지만, 바룩은 움직였다. 그는 주저 없이 병사들의 물통으로 다가가, 시큼한 포도주(포스카)를 해면에 듬뿍 적셨다. 그가 우슬초 가지 끝에 그것을 매달아 예수에게 다가가려 하자, 동료들이 그를 둘러싸고 빈정거렸다.
“오, 자비로운 바룩 납시셨네! 유대의 왕께 직접 술 시중을 드는 건가?”
“대왕 폐하, 저희 같은 천한 병사들의 갈증이나 달래주는 보잘것없는 술입니다. 부디 입에 맞으셨으면 좋겠군요.”
바룩은 그들의 조롱을 견뎌내야 했다. 유대인 사형수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입지가 낮은 그의 처지에서는 사회적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는 그들의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려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바룩은 예수의 마른 입술에 조심스럽게 해면을 가져다 댔다. 그는 예수의 얼굴을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이서 보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던 기도를 나직이, 오직 예수만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저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바로 그때였다. 포도주로 희미하게 입술을 적신 예수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바룩을, 아주 지긋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듯한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마치 그의 소리 없는 기도에 화답이라도 하듯, 마지막 남은 모든 힘을 끌어모았다. 그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향해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죽어가는 자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장엄하고 뚜렷했다.
“다 이루었습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그 선언이 끝나는 순간, 그는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
동시에, 발밑의 땅이 크게 진동하고, 멀리서 바위가 터져나가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병사들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그 혼돈 속에서, 오직 백부장만이 넋을 잃은 채, 숨이 멎은 예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경외와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사람은 진실로 신의 아들이었도다.”
바로 그 순간, 곁에 서 있던 바룩이 나직이, 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그의 말에 동조했다.
“맞습니다, 백부장님. 그는 하느님의 아들이었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혼잣말에 누군가 대답했다는 사실에 놀라, 고개를 돌려 바룩을 쳐다보았다. 그는 바룩의 얼굴에 남은 흉터와, 그의 텅 빈 듯하면서도 무언가로 가득 찬 눈빛을 보았다. 그는 이 모든 비극의 시작점에 있던, 그 ‘의리 있는 말썽꾼’ 병사를 기억해냈다.
“자네 이름이… 바룩, 맞나.” 백부장의 목소리는 이전의 냉소적인 톤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가 성전 뜰에서 일으켰던 소동도, 결국 이 사람과 관련된 일이었군.”
백부장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마침 바리새인 늙은이들에게서, 제자들이 이 자의 시체를 훔쳐 가 부활했다고 떠들 것을 우려하니 무덤을 지켜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어차피 자네 손으로 시작된 인연이니, 마무리도 자네가 하는 것이 맞겠지.”
그는 바룩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네에게 이 무덤을 지키는 임무를 주겠다. 가서, 그가 정말로 다시 살아나는지, 우리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자꾸나.”
바룩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명령을 받았다. 품 안에서는, 예수의 피 묻은 속옷이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희미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모든 것이, 끝이 났다. 그리고 모든 것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군중은 흩어지고, 강도들의 신음 소리마저 멎은 골고다 언덕에는 싸늘한 침묵만이 남았다. 바룩과 병사들은, 빌라도의 다음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십자가 곁을 지켰다.
해가 저물기 시작할 무렵, 몇몇 남자가 조심스럽게 언덕을 올라왔다. 앞장선 이는 부유한 의원처럼 보이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었고, 그의 뒤에는 산헤드린의 동료 의원인 니고데모가 무거운 향품 자루를 든 하인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런데 바룩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니고데모의 곁에서, 그와 함께 침통한 얼굴로 시신을 향해 걸어오는 또 다른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자신의 장인. 리디아의 아버지였다.
바룩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율법의 이름으로 자신과 마리아를 파멸 직전까지 몰고 갔던 남자. 자신의 딸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을 때, 비통한 심정으로 그녀를 떠나보냈던 바리새인 율법학자가, 왜 지금 이곳에 서 있는 것인가.
요셉은 빌라도 총독의 허가가 담긴 양피지를 백부장에게 보여주었다. 백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예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니고데모는 가져온 몰약과 침향을 풀었고, 리디아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깨끗한 세마포를 펼쳐 들었다. 그의 손길에는 슬픔을 넘어선 깊은 회한과, 이제야 진실을 마주한 자의 경건함이 담겨 있었다.
바룩은 경계 근무를 서면서, 그들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았다. 한때는 세상을 가졌다고 믿었을 저 율법학자의 어깨가, 얼마나 작고 무력하게 떨리고 있는지를. 문득, 장인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았다. 바룩은 순간 몸을 굳혔다. 비난일까, 혹은 낯선 곳에서 아는 이를 만난 어색함일까. 하지만 장인의 눈빛은 텅 비어 있는 듯하면서도,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회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그저, 아주 느리게 고개를 한번 끄덕였을 뿐이다. 그것은 화해도 용서도 아니었다. 이 거대한 비극 앞에서, 너나 나나 길 잃은 자일 뿐이라는 말없는 인정이었다. 장인은 시선을 거두고, 다시 시신을 염하는 일에 침묵으로 동참했다.
바룩은 알 수 있었다. 그는 율법을 지키러 온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가련한 딸에게 구원을 주고, 자신마저 길 잃게 만든 저 기묘한 사내의 마지막을, 제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어쩌면 제 딸을 대신하여 빚을 갚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리라. 그 모습은, 단순한 장례 절차를 넘어, 낡은 세상이 새로운 세상에 바치는 서툴지만 진실한 마지막 경의처럼 보였다.
동료 병사 하나가 휘파람을 불며 속삭였다.
“맙소사, 저 정도 양의 향을 마련할 돈이었으면 작은 마을 하나는 살 수 있겠는데? 죽은 왕에게 바치는 마지막 예물인가?”
하지만 바룩은 알 수 있었다. 저것은 단순한 예물이 아니었다. 저명한 바리새인들이,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하고 세상 앞에서 드리는, 침묵의 신앙 고백이었다.
그들은 요셉이 자신을 위해 미리 마련해 둔, 바위를 파서 만든 새 무덤으로 시신을 옮겼다. 그리고는 가져온 향품을 아낌없이 붓고, 정성스럽게 시신을 염했다. 그들의 손길에는 슬픔을 넘어선, 깊은 경외심이 담겨 있었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장정 여럿이 힘을 합쳐 거대한 돌을 굴려 무덤 입구를 막았다. 그때, 백부장이 바룩에게 다가왔다.
“바리새인들의 요청이다. 당분간 밤낮으로 이 무덤을 철통같이 지켜라. 누구도 시체에 손대지 못하게 하라.”
백부장은 무덤 입구에 붙여진 총독의 인장을 가리켰다. 바룩은 명령에 복종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차가운 돌무덤 앞에 첫 번째 경계 근무를 서기 시작했다. 어둠이 내린 언덕, 그의 마음속에는 니고데모가 바쳤던 그 강렬한 향내와, 품 안에 든 피 묻은 속옷의 희미한 온기가 뒤섞여, 기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3-5.
사흘째가 되는 날 새벽, 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깊고 차가웠다. 바룩은 마지막 교대 근무인 제4경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함께 근무를 서던 동료는 모닥불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지난 이틀간, 그들은 ‘시체 도둑이나 막는 한심한 신세’라며 투덜거리기만 했다.
바룩은 잠들지 않았다. 그는 굳게 닫힌 돌무덤을 응시하며, 품 안에 든 작은 천 뭉치를 매만졌다. 예수의 피 묻은 속옷. 그는 이틀 내내, 동료들의 눈을 피해 이 천 조각을 무덤 근처에 묻어주려 했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다. 운명은 그에게, 이 끔찍한 기념품을 계속해서 지니고 있으라 명하는 듯했다. 동쪽 하늘이 아주 희미하게, 잿빛으로 밝아오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르르릉…
갑자기 땅이 크게 흔들렸다. 졸고 있던 동료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그들의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눈을 멀게 할 듯한 눈부신 빛과 함께, 하늘로부터 번개 같은 형상을 한 존재가 내려와, 거대한 돌문을 마치 작은 조약돌처럼 가볍게 굴려내 버렸다.
“으아악! 유령이다!”
동료는 혼비백산하여, 무기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어둠 속으로 달아나 버렸다.
하지만 바룩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두려움을 넘어선, 거대한 경외감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천사는 그를 잠시 바라보더니, 조용히 무덤 한편으로 물러나 섰다. 그리고, 어두운 무덤 안에서, 한 인영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채찍 자국과 못 자국이 선명했지만, 더 이상 고통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 눈부시게 하얀 세마포를 입은 예수였다.
그는 바룩의 앞으로 다가왔다. 바룩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예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바룩은 그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불현듯 며칠 전 들었던 소문이 스쳐 지나갔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의 제자 유다가 ‘배신의 증표’로 그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는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추악하고 비겁한 그 행위. 바룩은 생각했다. ‘저분은 가장 가까운 이에게 그런 상처를 받았는데, 자신을 채찍질한 나 같은 죄인에게는 어떤 벌을 내리실까.’
바로 그때였다.
예수는, 바룩의 그 불안한 생각을 모두 읽기라도 한 듯, 그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그것은 사랑과 용서, 그리고 완전한 구원의 입맞춤이었다. 가장 깊은 배신이 있었던 바로 그곳에, 가장 위대한 사랑이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바룩의 온몸에, 죄책감을 씻어내는 듯한 따뜻한 전율이 흘렀다. 바룩은 떨리는 손으로, 품 안에서 고이 간직했던 피 묻은 속옷을 꺼냈다.
“주여. 이것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그것을 받아들지 않았다. 대신, 바룩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그 속옷을 다시 그의 품 안으로 넣어주었다. 그리고는 나직이 말했다.
“그것은 이제 너의 것이다. 나를 기억하는 증표로 삼으라.”
그 말을 남기고, 예수는 동이 터오는 빛 속으로, 그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려는 듯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바룩은 그가 떠나는 뒷모습을, 넋을 잃은 채 바라볼 뿐이었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었다. 바로 그때, 언덕 아래에서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예수를 따르던 여인들이었다. 어두운 새벽길을 횃불도 없이, 서로를 의지하며 걸어온 그들의 얼굴에는 슬픔과 결연함이 뒤섞여 있었다. 그들은 스승의 시신에 마지막으로 향유를 발라드리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 가장 앞에는 리디아가 있었다.
여인들은 무덤에 다가오다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들을 막아섰어야 할 거대한 돌문은 저만치 굴러가 있었고, 무덤 입구는 칠흑 같은 어둠을 드러낸 채 텅 비어 있었다.
“맙소사. 시신을, 시신을 도둑맞았어요!”
막달라 마리아가 절망적인 비명을 질렀다. 다른 여인들도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 혼란 속에서, 오직 리디아만이 침착했다. 그녀의 시선은 텅 빈 무덤이 아니라, 그 앞에 석상처럼 서 있는 로마 군인, 바룩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군복은 흙먼지로 더러워져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지난밤의 피로나 경계심 대신, 설명할 수 없는 깊은 평온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리디아는 천천히, 다른 여인들을 헤치고 바룩의 앞으로 다가섰다. 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듯, 또 모든 것이 변해버린 두 사람이, 텅 빈 무덤 앞에서 마주 섰다. 리디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바룩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그는 더 이상 과거의 아내나 자신을 파멸시키려 했던 복수심에 불타는 여인을 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과 같은 스승을 따르고, 같은 진실을 목격한, 한 명의 동반자를 보고 있었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꾸며낼 필요도 없었다.
“오랜만이오, 여보.”
그는 아주 담담하게, 오래전 습관처럼 그녀를 불렀다.
“당신이 찾는 그분은, 조금 전에 되살아나셔서 저쪽으로 떠나셨소.”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광기나 흥분도 없었다. 마치, ‘어제 비가 왔다’고 말하는 것처럼, 겪은 사실을 그대로 전할 뿐이었다.
리디아는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눈을 보았다. 그 평온한 눈빛이야말로, 그 어떤 기적보다 더 확실한 증거였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바룩에게 한 걸음 더 다가와, 그의 이마와 목덜미에 남은, 돌에 맞아 생겼던 희미한 흉터를, 아주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리디아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부활한 예수가 떠나갔다는 그 동쪽 하늘을 향해, 조용히 발길을 돌렸다. 다른 여인들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홀로 남은 바룩은, 이제 완전히 밝아온 아침 햇살 속에서, 자신의 품 안에 든 작은 천 뭉치를 가만히 움켜쥐었다. 그의 마지막 임무는, 끝이 났다.
3-6.
바룩이 요새로 복귀하자마자, 예수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이 그를 은밀히 불렀다. 그들은 초조하고 불안한 얼굴로, 그의 앞에 묵직한 돈주머니를 내려놓았다.
“들었네, 병사여. 무덤에서 일어난 그 해괴한 일들에 대해서 말이네.”
한 율법학자가 입을 열었다.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로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밤사이에 제자들이 와서 그의 시체를 훔쳐 갔다고 사실대로 말해주게. 이 돈이면, 자네가 꿈꾸던 것 이상을 얻을 수 있을 걸세.”
바룩은 그 돈주머니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한때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부와 명예의 약속. 하지만 이제 그의 눈에는, 그것이 하찮은 돌멩이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율법학자들의 불안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텅 빈 무덤처럼 고요하고 단단했다.
“저는 오직 제가 본 사실만을 말할 뿐입니다. 거짓말로 세상을 혼란케 하지는 않을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는 돈주머니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그들의 방을 나섰다.
그 후, 바룩은 남은 복무 기간을 묵묵히 채웠다. 예루살렘 성벽 안, 좁은 골목 어딘가에 있을 그 제자를 때때로 떠올렸지만 그를 찾아갈 수 없었다. 예수에게 수난을 준, 로마 군복을 입은 자신은 아직 그의 앞에 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이 그의 발목을 붙들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계절이 흐르고, 그의 젊음은 고된 군 생활 속에 닳아 없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제대하여 로마 시민권을 얻은 그날, 그는 자신만의 작은 여정을 떠났다. 그는 오랜 세월 매일같이 걷던 예루살렘의 한 골목, 그가 한 번도 용기 내어 들여다보지 못했던 어느 작은 공동체의 문을 향해 걸어간 것이다. 그는 평생을 방황하며 찾아 헤맨 진실이, 사실은 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오랜 수소문도 필요 없었다. 예루살렘의 신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주님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로 모시고, 온갖 핍박 속에서도 묵묵히 교회의 기둥으로 서 있는 제자’.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마침내, 바룩은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룩은 그를 알아보았다. 십자가 아래에서 보았던 바로 그 제자였다. 물론, 그가 기억하는 앳된 청년의 모습은 아니었다. 햇볕에 그을리고 거칠어진 얼굴, 손에는 목공일로 잡힌 듯한 굳은살, 눈가에 옅게 새겨진 세월의 고뇌가 그가 걸어온 길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은 십자가 아래에 서 있던, 그날의 청년처럼 깊고 맑았다. 그는 장년의 낯선 로마 시민권자의 방문에도, 오랜 친구를 맞듯 조용히 자리를 내어주었다.
“저는, 그분의 마지막을 지켰던 로마 병사였습니다.” 바룩이 자신을 밝혔다.
요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룩을 바라봤다.
바룩은 깊은 숨을 한번 내쉬고, 아주 오래전, 예루살렘의 어느 회당에서 한 여인에게 물 한 잔을 건네받았던 그날의 이야기부터, 조용히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길고 어리석었던 사랑과, 성전 뜰에서의 심판, 그리고 골고다 언덕 위에서, ’다 이루었다’는 마지막 외침을 듣기까지의 모든 것을.
이야기가 끝났을 때, 창밖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요한은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나직이 말했다.
“그 모든 기억의 무게를, 그토록 긴 세월을 이 도시 안에서 혼자 짊어지고 오셨군요.”
그 말에, 바룩은 처음으로 자신의 가장 깊은 비밀을 꺼내 보였다. 그는 품 안에서, 아주 오랫동안 간직해 온 작고 네모난 아마포 뭉치를 꺼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조심스럽게 펼쳤다. 세월의 흔적으로 빛은 바랬지만, 그 위에는 지워지지 않는 피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예수의 속옷이었다.
“그분께서는 이것을 제게 남기시며, 당신을 기억하는 증표로 삼으라 하셨습니다.”
요한은 숨을 멈췄다. 그는 경외감에 휩싸여, 그 천 조각을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이 피의 흔적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그분은 처음부터 빛이셨고, 그 빛이 어둠 속에 비치었으나, 어둠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요한은 눈을 들어 바룩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이제 현자의 그것이 아니라, 같은 전쟁을 치른 전우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고뇌해왔던 병사여. 그대는, 가장 깊은 어둠의 한복판에서 마침내 그 빛을 본 증인이시군요.”
그는 곁에 있던 낡은 양피지 한 뭉치를 꺼내 바룩에게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대의 이야기는, 내가 기록하는 이 복된 소식의 빈 곳을 채워줄 아주 귀한 조각이 될 것입니다. 부디, 처음부터 다시 한번, 자세히 들려주십시오.”
바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비로소, 자신의 길고 길었던 방황이 끝났음을, 그리고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이제 누군가를 위한 ’복된 소식’의 일부가 될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평생 처음으로, 완전한 평화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