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1부
요한복음 8장 '간음한 여인' 이야기를 재해석한 성경 팬픽션. 고아 출신인 마리아와 로마 보조병 바룩의 금지된 사랑, 그리고 예수의 자비를 그린 소설 1부
1-1
밤의 장막이 예루살렘의 지붕들을 막 덮기 시작한 시간, 다섯 살배기 마리아는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얼마 전 부모님을 한꺼번에 앗아간 열병의 기억은, 꿈속에서 끈질기게 아이를 괴롭혔다. 식은땀에 젖은 작은 몸이 흐느낌과 함께 가늘게 경련할 때마다, 곁에 누운 아네스의 심장도 함께 내려앉았다. 아네스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자신의 젊은 시절 목소리를 겨우 끌어모아 희미한 자장가를 불렀다.
“나의 작은 비둘기야, 두려워 말아라. 밤새 내가 너의 곁을 지킬 테니…”
그녀의 노래는 아름답지 않았다. 슬픔에 잠기고 세상의 오해에 할퀴어진, 거칠고 메마른 소리였다. 하지만 그 투박한 음절 하나하나에는,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이를 향한 헌신적인 사랑이 온전히 담겨 있었다.
마리아의 흐느낌이 점차 잦아들고 고른 숨소리로 바뀔 때까지, 아네스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창문으로 스며든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여인의 얼굴에는 깊은 외로움의 골이 패어 있었지만, 잠든 마리아를 내려다보는 그 순간만큼은, 그녀의 눈빛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그것처럼 따스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도 수많은 밤이 흘렀다. 아네스의 거친 자장가는 소녀의 악몽을 지키는 굳건한 성벽이 되었고, 그녀의 따스한 품은 마리아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세상이 되었다. 아네스의 무릎맡은 마리아의 첫 세상이었고, 그 곁에서 꼼지락거리는 바늘은 첫 장난감이었다.
아이는 아네스의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를 서툰 선의로 나누기 시작했다. 어린 손으로 엉성하게나마 친구의 찢어진 인형 옷을 기워주었고, 빵 한 조각을 얻어먹은 날에는 옆집 할아버지의 낡은 자루를 꿰매드렸다. 아이의 서툰 바늘땀에는 대가를 바라는 마음 대신, 그저 고사리손으로나마 무언가를 돕고 싶다는 순수한 기쁨만이 담겨 있었다.
소녀의 그 고운 마음씨는 세월과 함께 야무진 솜씨로 자라났다. 어릴 적 순수한 호의로 시작된 바느질은, 어느새 그녀와 아네스의 생계를 책임지는 귀한 재주가 되어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정당한 값을 치르고 그녀에게 일을 맡겼지만, 그들은 돈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그녀의 변치 않는 따스함도 함께 느끼곤 했다.
덕분에 ‘아네스의 아이’는 마을 전체의 ‘우리 마리아’가 되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수려한 외모뿐 아니라, 오랜 시간 증명된 그 선한 마음에서 우러나와 더욱 빛났다. 하지만 그 사랑의 빛은 신기하게도 마리아에게만 머물렀다. 사람들은 마리아에게는 환한 미소를 보여주면서도, 그 곁에 그림자처럼 서 있는 아네스에게는 조심스러운 침묵을 지켰다. 그렇게 마리아는 모두의 사랑 속에서, 자신의 삶을 감싸고 있는 그 미묘한 슬픔의 장막을 아직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했다.
1-2
안식일의 예루살렘 회당. 바룩은 기도 인파 속에서 외딴 섬이었다. 사복으로도 군인의 흔적을 다 감추지 못한 탓에, 등 뒤로 경멸의 속삭임이 낮게 파고들었다. 그는 익숙하게 고독을 삼키며 구석진 자리에 몸을 묻었다. 그때, 회당의 여성 봉사자 중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순례자나 나그네들에게 물을 건네며 그들의 필요를 살피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마리아였다. 그녀는 바룩 앞에 멈춰 서서 작은 토기 잔을 공손히 내밀었다.
“회당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먼 길 오셨다면, 목이라도 축이십시오.”
그녀의 목소리에는 의무감 이상의 따스함이 배어 있었다. 바룩이 놀라 고개를 들자, 그녀의 맑은 눈과 마주쳤다. 그 눈에는 어떠한 편견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 잔을 받아 들었다. 시원한 물 한 모금이 타는 듯한 갈증뿐 아니라, 마음속 응어리까지 씻어 내리는 듯했다.
“고맙소.”
그가 겨우 한 마디를 뱉었을 때, 그녀는 이미 미소와 함께 돌아서고 있었다. 그 찰나, 바룩은 그녀의 소매 끝에 정성스럽게 기워진 자국을 보았다. 닳아 해진 부분을 버리지 않고, 한 올 한 올 되살린 그 섬세한 손길이 그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며칠 후, 바룩은 시장 어귀에서 순찰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눈에 놀라운 광경이 들어왔다. 마리아가 동료 병사 중 한 명에게 갓 수선을 마친 로마군의 붉은 망토를 건네고 있는 것이었다. 터진 어깨 부분은 거의 흔적도 없이 꿰매져 있었고, 병사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녀에게 몇 푼의 동전을 쥐여 주었다.
바룩은 순간 숨을 멈췄다. 회당에서 보았던 그 고요한 여인이, 자신들의 거친 세계와 맞닿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경멸이 아닌, 존중받는 솜씨로. 그녀는 더 이상 그저 ‘친절한 여인’이 아니었다. 조용한 힘과 재능을 가진, 훨씬 더 흥미롭고 놀라운 존재로 다가왔다. 임무 교대 시간이 되자마자, 바룩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회당에서 뵈었던 분 아닙니까?”
마리아가 고개를 돌려 그를 알아보았다. “당신의 솜씨는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과연 명불허전이군요.”
바룩이 방금 전의 붉은 망토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리아의 얼굴에 옅은 홍조가 떠올랐다.
“과찬이십니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한 작은 손재주일 뿐인걸요.”
“아니. 그건 재능이오.”
바룩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진심 어린 눈빛에 마리아도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저는 바룩이라고 하오.”
“마리아입니다.”
그들의 첫 대화는 그렇게, 그녀의 따뜻한 친절과 모두가 인정하는 바느질 솜씨 위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그 만남 이후, 바룩의 순찰길은 늘 마리아의 집 앞을 향했다. 그는 그저 멀리서, 등불 아래 드러나는 그녀의 고요한 옆모습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손가락을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고단함을 잊곤 했다.
바룩은 동료들의 찢어진 옷을 거의 긁어모으다시피 해 마리아에게 가져갔다. 덕분에 마리아의 작은 작업 바구니는 마를 날이 없었고, 두 사람의 만남은 ‘일감’이라는 자연스러운 핑계 아래 매일같이 이어졌다. 그날도 바룩은 수선이 끝난 마지막 옷더미를 받아 들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다음 일감을 기약하며 돌아섰을 그가, 어쩐지 머뭇거리며 쉽사리 발을 떼지 못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퉁명스러웠지만, 그 속에는 숨길 수 없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마리아 할말이 있어요.”
“네, 바룩. 무슨 말씀을 하실건가요?”
“바느질은… 핑계였소. 이제 내 동료들은 더 이상 수선할 옷이 없소.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을 했소. 우리가 꼭 바느질을 해야지만 만나는 사이여야 할까? 내가 잠시만 솔직해지면, 그런 쓸데없이 무거운 옷감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잖소.”
그의 돌직구 같은 고백에, 마리아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푸흣,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바보인 줄 아세요? 정말 바느질 때문에 매일같이 오셨다고 생각했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일거리가 많아져서 솔직히 기분이 좋긴 했어요. 물론, 당신 얼굴을 보는 데 비할 바는 못 되지만요.”
마지막 말을 할 때 그녀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그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대답에, 이번에는 바룩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두 사람은 한참을 마주 보고 웃었다. 더 이상 어떤 핑계도, 무거운 옷감도 필요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연인이 되었다. 소란한 세상 속에서 서로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된 사랑. 하지만 그 행복이 깊어질수록, 바룩의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고백하지 못한 무거운 비밀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1-3.
두 사람의 사랑은 더 이상 ‘일감’이라는 핑계 뒤에 숨을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렸다. 하지만 아네스의 깊어지는 병세와 밤새 이어지는 기침 소리는, 마리아의 집에서 그들이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바룩이었다.
“내게 적당한 거처가 있어요. 늦은 밤, 이모님을 방해하지 않고 우리가 편히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그의 조심스러운 제안에, 마리아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둘만의 시간이 절실했다.
처음으로 바룩의 집에 들어선 순간, 마리아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집 안을 둘러보았다. 군인의 거처답게 꾸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단출하고 삭막한 공간. 마리아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오직 바룩, 그 한 사람의 흔적으로만 가득 찬 특별한 공간처럼 보였다.
바룩은 그녀를 침실로 이끌었다. 방 한가운데 놓인, 두 사람이 눕기에 넉넉한 크기의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마리아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바룩은 그런 그녀가 사랑스럽다는 듯, 부드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당신을… 온전히 느끼고 싶소, 마리아.”
그의 목소리는 열망으로 낮게 잠겨 있었다. 마리아는 대답 대신 그의 품에 더 깊이 안기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처음으로 온전히 하나가 되었다. 등잔 불빛 아래 드러난 서로의 몸은 낯설었지만 완벽했고, 나누는 숨결은 세상 어떤 기도보다 경건했다. 마리아는 그의 단단한 품 안에서, 바룩은 그녀의 부드러운 곡선 안에서 그 어떤 불안도 없는 완벽한 평온과 충만함을 느꼈다. 바룩의 집은 그들의 성역이 되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고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었다. 마리아는 이 행복이 영원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날도 두 사람은 그의 집, 그의 침대 위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서로의 온기에 취해, 세상의 모든 것이 희미해지는 순간이었다. 마리아는 행복에 겨워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속삭였다.
“바룩… 우리, 언제나 이렇게 함께할 수 있겠죠?” 그녀의 순수한 질문은, 바룩의 심장에 비수처럼 꽂혔다. 행복으로 달아올랐던 그의 몸이 순간 차갑게 굳어지는 것을 마리아는 느꼈다. 그를 얽매고 있던 비밀의 무게가,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는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바룩?” 그는 대답 대신 그녀의 어깨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등잔에 새로 기름을 채우고, 심지를 돋우었다. 방 안이 조금 더 밝아졌다. 어둠 속에 감추고 싶었던 진실을, 이제는 기꺼이 밝은 빛 아래 드러내겠다는 의식처럼 보였다. 바룩은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등을 돌린 채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낯설게 잠겨 있었다.
“마리아… 나는… 나는 당신에게 온전히 자유로운 사내가 아니오.”
순간, 방 안의 모든 소리가 멎었다. 따스했던 공기가 칼날처럼 식어 내렸다. “나에게는… 법적인 아내가 있소.”
마리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얼어붙은 몸 그대로, 그의 넓은 등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바룩은 차마 그녀를 돌아보지 못한 채,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은 리디아. 바리새파 율법학자의 딸이오. 딱히 끌리는 여자는 아니었지만, 적당한 혼처였고, 살면서 희미한 정은 생겨났지. 그런데 결혼하고 난 후에, 나에게는 야망이 생겼소. 로마 시민권을 얻고, 이 지긋지긋한 속주민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소. 그래서 보조병(Auxilia) 모집에 지원했소.” 그의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
“25년. 25년만 복무하면, 나뿐만 아니라 아내와 앞으로 태어날 자식들까지 당당한 로마 시민이 될 수 있었소. 하지만 리디아는 격렬하게 반대했지. 율법학자의 딸답게 신앙심이 깊은 여자라… 내가 우리 민족을 배신했다며 나를 비난하고는, 친정으로 돌아가 버렸소. 나는 현재 혼자 살고 있소.”
바룩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의 목소리가 더욱 낮고 처절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마리아. 당신을 만난 후에… 나는 다시 그녀를 찾아갔소. 그녀의 아버지를 만났지. 이혼해달라고, 제발 나를 놓아달라고 애원했소. 내 몫의 지참금도, 그 무엇도 다 포기하겠다고 했소. 오직 당신과 함께하기 위해서… 하지만 리디아는, 끝내 거절했소. 신의 이름으로 맺어진 언약을 깰 수 없다면서.”
그의 고백에, 마리아는 비로소 모든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과거의 실수가 아니었다. 여전히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벗어날 수 없는 현재의 족쇄였다.
“당신에게 접근한 것, 이런 처지이면서도 당신의 온기를 탐했던 것… 내 인생 최악의 죄요. 정말… 미안하오, 마리아.” 고백이 끝나고, 방 안에는 등잔 심지가 타들어 가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마리아의 머릿속은 하얗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분노해야 할까? 절망해야 할까? 아니면 이 남자를 경멸해야 할까?
그녀는 오히려 그의 떨리는 등을 향해 손을 뻗으며, 나직이 속삭였다.
“말해주어서… 고마워요, 바룩. 그 용기를 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아요.”
그녀의 눈에서 마침내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배신감의 눈물이 아니었다. 차라리, 너무도 사랑하기에 함께 짊어져야만 하는 이 운명의 무게에 대한 슬픔의 눈물이었다. 법적인 유부남을 사랑하는 것. 이 끔찍한 진실 앞에서, 그녀는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바룩의 고백이 끝나고, 두 사람 사이에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침묵이 흘렀다. 마리아는 더 이상 그를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흩어진 옷가지를 추슬렀다. 그녀의 모든 움직임은 꿈속처럼 느리고 비현실적이었다. 바룩은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그럴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마리아가 말없이 문을 열고 밤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는 그저 고개 숙인 죄인처럼 앉아 있을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리아의 세상은 무너져 내렸다. 아네스의 고통스러운 기침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그녀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거대한 비명 소리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나에게는… 법적인 아내가 있소.’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도, 그의 고통스러운 등이, 그가 털어놓은 끔찍한 진실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배신감에 몸을 떨어야 마땅한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마음을 채운 것은 그를 향한 연민과 지독한 사랑이었다. 그래서 더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방 안을 서성였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바로 그때, 기억의 편린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바룩의 집에 처음 갔던 날, 호기심에 가득 차, 설레는 마음으로 집 안을 둘러보던 자신의 모습.
그녀는 부엌을 구경하고 있었다. 군인의 집답지 않게, 선반 위에는 다양한 종류의 향신료 단지들과 정갈하게 정리된 조리 도구들이 있었다. 그녀는 그의 꼼꼼함에 감탄하며 말했다. “와, 군인 아저씨가 요리도 직접 하세요?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 순간, 바룩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그는 애써 태연한 척 대답했다. “아니… 가끔. 아주 가끔…”
그녀는 그의 어색한 대답을 눈치채지 못했다. 시선은 이미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혼자 쓰기에는 조금 커 보이는 식탁과, 그 곁에 놓인 의자 두 개. ‘손님을 대접하기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다.’ 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 지었을 뿐이었다. 침실에서는 더 큰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벽장 안에, 그가 혼자 쓰고도 남을 만큼 깨끗하게 세탁되어 잘 개어진 여분의 아마포 천들이 넉넉하게 쌓여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나 누이께서 자주 들러 챙겨주시나 봐요. 정말 자상하시네요.” 그녀의 순수한 감탄에, 바룩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 “피곤할 텐데… 이리 와서 좀 쉬시오.”
기억이 현재로 돌아온 순간, 마리아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그 어색했던 침묵과 굳어있던 표정의 의미를. 그 잘 정돈된 부엌은 바룩의 것이 아니었다. 두 개의 의자는 손님용이 아니었다. 넉넉했던 아마포 더미는 어머니의 보살핌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그 집에 살았던 다른 여자, 리디아의 흔적이었다.
마리아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자신이 사랑을 나누었던 그 집, 자신이 온전한 행복을 느꼈던 그 공간 전체가, 한 여자의 부재로 완성된 거대한 거짓말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발을 들인 곳은 바룩의 집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리디아의 집’이었다. 자신은 그저, 다른 여인의 자리를 잠시 차지했던 침입자에 불과했다. 그 끔찍한 깨달음과 함께, 마침내 분노와 자기혐오,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그녀를 덮쳤다. 마리아는 소리 죽여 울기 시작했다.
마리아는 며칠 밤낮을 뜬 눈으로 새웠다. 바룩의 고백이 남긴 상처 위로,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들이 소금처럼 뿌려졌다. 그녀는 바룩을 증오해야 할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그를 만나지 않았다.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얼굴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1-4.
그녀를 지옥 같은 고뇌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한 것은, 아네스의 가빠지는 숨소리였다. 어느 날 저녁, 아네스는 희미한 정신 속에서 마리아의 손을 찾았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그녀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마리아의 손을 잡는 힘만은 놀랍도록 강했다.
“마리아… 내 딸…” 아네스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마지막 등불처럼 선명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내가… 내가 왜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지… 아니?”
마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그 이유를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마을의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에게도 암묵적인 금기였다.
“내가… 딱 너만 할 때였어. 나는… 정말로 매력적인 남자를 만났지. 그는 여행자였고… 그의 상냥함과 달콤한 미소는… 아직도 잊히질 않는구나.” 아네스의 얼굴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마치 오래된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래 머물지 않고 떠나갔어.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나를 부정한 여자라며 등을 돌렸지.” 그녀의 목소리에 아주 잠깐, 오래 묵은 슬픔이 스쳤다.
“나는… 결코 순결을 잃지는 않았단다. 하지만 아무도 나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았어. 네 부모님만이… 나에게 친구로 남아준 유일한 은인이었지. 그래서 너를 내가 키워야만 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은혜를 이렇게라도 갚을 수 있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어.”
아네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마리아의 얼굴을, 마치 자신의 마지막 기억 속에 새겨 넣으려는 듯,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마리아… 나는 평생 혼자였지만… 그 덕분에 너를 키울 수 있어서, 단 한 순간도 외롭지 않았다. 너는 내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야.”
아네스는 마리아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상대가 누구인지, 그 사랑에 어떤 족쇄가 채워져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딸 같은 아이가 자신처럼 사랑 때문에 불행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사랑은… 축복이지만,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삼키는 불꽃이 될 수도 있더구나. 부디… 부디 너는… 나를 기억하며… 복되게 살아다오, 마리아…”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아네스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그녀의 눈은 빛을 잃었다. 자신을 지켜주던 유일한 성벽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마리아는 세상을 잃은 것 같은 절망감에 휩싸여 소리 내어 울부짖었다.
아네스의 숨이 멎은 후, 마리아의 시간도 함께 멈췄다. 그녀는 텅 빈 방 안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이모의 손을 붙잡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자신을 지켜주던 세상이 통째로 사라진 지금, 그녀는 광활한 사막에 홀로 남겨진 어린아이와 같았다.
바로 그때, 굳게 닫혔던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바룩이었다. 그는 며칠간의 냉각기 동안 차마 그녀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멀리서 그녀의 집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러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용기를 내어 찾아온 것이었다. 방 안의 풍경을 본 순간, 그는 모든 것을 직감했다. 마리아는 넋이 나간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원망도, 분노도, 사랑도 아니었다. 그저 텅 비어 있었다. 바룩은 아무 말 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그 작은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제야 둑이 터진 듯, 마리아는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 아이처럼 울부짖기 시작했다. 바룩은 그녀의 등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저 묵묵히 그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그날 이후, 바룩은 모든 것을 주도했다. 그는 슬픔에 잠긴 마리아를 대신해, 유대인의 율법과 관습에 따라 아네스의 장례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나갔다. 그는 마을의 장로들을 찾아가 정중하게 부고를 알렸고, 아네스의 몸을 닦고 수의를 입힐 연고자를 수소문했으며, 매장지를 알아보고 장례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로마의 앞잡이인 줄로만 알았던 그가, 이토록 헌신적으로 유대의 장례를 치르는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그의 진심을 보았고, 어떤 이들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누구도 그의 행동을 막아서지 않았다. 장례식이 거행되던 날, 마리아는 내내 바룩의 팔에 의지해 서 있었다. 그의 단단한 존재가 없었다면, 그녀는 이미 땅속으로 함께 꺼져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네스의 시신이 땅에 묻히고, 흙이 그 위를 덮는 모든 과정을, 그녀는 그의 품에 기댄 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모든 것이 끝나고 텅 빈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마리아는 비로소 깨달았다. 리디아의 존재, 유부남을 사랑한다는 죄책감, 세상의 시선… 그 모든 것이 아네스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상실감 앞에서는 하찮게 느껴졌다. 지금 그녀 곁에 있는 것은 바룩뿐이었다. 자신의 가장 깊은 절망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와, 무너진 세상을 대신해 기둥이 되어준 단 한 사람.
그녀는 고뇌의 시간을 잊기라도 하듯, 아네스의 빈자리를 채우기라도 하듯, 그에게 더욱더 파고들었다. 사랑은 이제 죄책감을 넘어, 생존을 위한 유일한 동아줄이 되어 있었다. 이 위태로운 결속이 어떤 파국을 불러올지, 아직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
바룩의 고백 이후, 그의 집은 더 이상 마리아에게 안식처가 될 수 없었다. 그곳의 모든 사물은 ‘리디아’라는 이름의 가시가 되어 그녀를 찔렀고, 함께 눕는 침대는 율법을 어기는 죄의 무게를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며칠을 고뇌하던 마리아는, 결국 바룩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바룩… 더 이상 당신의 집에는 갈 수 없어요. 그곳에 있을 때마다, 나는… 나는 율법을 어기는 죄인이 되는 것 같아요. 이 죄의 무게를 견딜 수가 없어요. 우리… 다른 장소를 찾아봐요.”
그녀의 고통을 이해한 바룩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후, 그는 마리아를 데리고 예루살렘 성벽 너머, 인적이 드문 작은 언덕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오래전 포도밭을 지키기 위해 지어졌다가,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낡은 돌 망대가 외로이 서 있었다. 그곳은 두 사람만의 아늑하고 비밀스러운 둥지가 되었다.
1-5.
한편, 바룩과 별거 중이던 리디아는 바룩의 소식을 시장에서 만난 친척 아주머니의 목소리로 접했다. “리디아, 너도 들었니? 네 남편 바룩 말이야. 얼마 전에 홀몸으로 죽은 불쌍한 여인이 있었는데, 글쎄 네 남편이 그 집안의 장자라도 되는 것처럼 장례를 다 치러주지 않겠니.”
리디아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주머니는 주위를 한번 살피더니, 목소리를 더욱 낮추었다. “그런데 그 죽은 여자가 딸같이 키운 예쁘장한 젊은 여자가 하나 있다더구나. 네 남편이 그 처녀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위로하는데, 그 모습이 꼭 부부 같더라지 뭐야. 마을 사람들이 다들 수군거렸단다. 대체 어떤 사이기에 저러는 거냐고… 혹 네가 아는 일이냐?”
리디아의 심장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딸같이 키운 예쁘장한 젊은 여자’. 그 막연한 묘사가 오히려 그녀의 질투심에 더 큰 불을 질렀다.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남편의 빈자리가, 시커먼 배신감으로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그날부터 독이 오른 뱀처럼 바룩의 행적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간의 끈질긴 추적 끝에, 그 ‘예쁘장한 젊은 여자’의 이름이 마리아라는 것과, 바룩이 그녀의 집 근처를 맴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리고 마침내, 그가 며칠에 한 번씩, 해가 질 무렵이면 성벽 너머 언덕 쪽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날 밤, 리디아는 어둠을 방패 삼아 그를 조심스럽게 뒤쫓았다. 그리고 마침내, 언덕 위 낡은 망대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등잔 불빛을 발견했다. 그녀는 짐승처럼 숨을 죽이고 망대로 다가가, 돌벽의 틈새로 안을 엿보았다. 그리고 보고야 말았다. 자신의 남편 바룩이, 마리아라는 저 여자와 한데 뒤엉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피가 거꾸로 솟았다. 그들의 신음 소리는 그녀의 귀에 율법을 조롱하는 저주처럼 들렸다. 리디아는 떨리는 손으로 입을 막고, 소리 없는 비명을 삼켰다. 분노와 배신감이 그녀의 모든 이성을 마비시켰다. 그녀는 그 후로도 며칠간 그들의 밀회를 지켜보며, 그들이 망대를 찾는 요일과 시간, 그들의 행동 패턴을 완벽하게 파악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증거를 손에 쥔 그녀는 바리새파 율법학자인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녀의 눈은, 더 이상 사랑을 갈구하던 여인의 눈이 아니었다. 차갑고 잔인한 복수심만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리디아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그 속에는 억눌린 분노가 용암처럼 들끓고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 앞에 서서, 눈물 한 방울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아버지, 율법의 수호자시여. 제가 신의 이름으로 고발할 것이 있습니다.”
율법학자인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비장한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며칠 후, 달이 가장 높이 뜨는 한밤중이 되면, 마을 너머 언덕 위 낡은 망대에서 간음을 저지를 한 쌍의 남녀가 있습니다. 저는 그들의 불경한 만남을 며칠간 지켜보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율법의 이름으로, 그 부정한 현장을 덮쳐 신의 권위를 바로 세워주시옵소서.”
딸의 단호한 제보에 아버지는 깊은 시름에 잠겼지만, 율법을 더럽히는 자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몇몇 신실한 바리새인 동료들을 모았다.
그리고 약속된 밤. 한 줌의 빛도 없는 어둠을 틈타, 율법학자와 그의 패거리들은 짐승처럼 숨을 죽이고 언덕 위 낡은 망대를 포위했다. 망대의 돌 틈새로, 과연 희미한 등잔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율법학자는 비장한 표정으로 손짓했다.
“덮쳐라!”
문은 거친 발길질 한 번에 부서져 나갔다. 횃불을 든 사내들이 고함과 함께 들이닥쳤다.
망대 안, 낡은 천 위에서 뒤엉켜 있던 한 쌍의 남녀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얼어붙었다. 갑작스러운 불빛에 눈이 먼 여자가 황급히 몸을 가렸고, 남자는 본능적으로 여자의 앞을 가로막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 부정한 자들아! 너희는 율법을 어겼다!”
율법학자가 준엄한 목소리로 외치며, 횃불을 든 채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죄인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그들의 죄를 만천하에 공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횃불이 남자의 얼굴을 비추는 순간, 리디아 아버지의 시간은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커졌다. 준엄했던 그의 얼굴이 경악으로 하얗게 질려갔다. 그곳에 서 있는 남자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부정한 죄인이 아니었다. 자신의 딸 리디아의 남편. 자신의 사위, 바룩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 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모든 조각이 맞춰졌다. 딸의 차가웠던 눈빛, 단호했던 고발, 그리고 지금 눈앞의 이 기막힌 광경.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한 마디를 내뱉었다.
“…자네가… 자네가 여기서 왜…?”
바룩 역시, 장인의 얼굴을 보고는 사색이 되었다. 변명할 말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야망, 사랑, 체면, 죄책감. 모든 것이 뒤섞여 그의 머릿속을 불태웠지만, 지금 그의 눈에는 오직 공포에 질려 떨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만이 보였다. 이 기묘한 대치 상황에, 함께 왔던 다른 바리새인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들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이가 율법학자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나직이 물었다.
“아는 자인가?”
장인은 대답 대신, 무력감과 환멸에 휩싸여 손을 휘저었다. “여인만… 여인만 끌고 나오너라. 저 자는 내버려 두어라.”
바리새인들은 마리아의 팔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그녀는 속옷이나 다름없는 얇은 옷 한 장만 걸친 채, 어둠 속으로 질질 끌려 나갔다. 그들은 마리아를 망대 근처의 빈 창고에 가두고, 문 앞에 보초를 세웠다. 바룩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바리새인들은 망대 밖에서 은밀한 회의를 시작했다. 그들은 로마 보조병인 바룩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화제를 여인에게로 돌렸다. 그때, 계략을 주도하던 연장자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나사렛 예수를 곤경에 빠뜨릴 자신의 완벽한 정치적 함정을 설명했다.
“내일 자칭 신의 아들이라고 떠들고 다니면서 우리의 율법을 농락하는 간교한 나사렛 예수에게 이 여자를 넘겨봅시다. 간음한 여자를 어떻게 처리하겠느냐고 물어보는 것이오. 만약 용서해야 한다고 대답하면 우리는 그를 율법을 무시하다보니 심지어 십계명조차도 모른다며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소. 그리고 그가 율법에 따라 이 여자를 돌로 쳐서 죽여야 한다고 대답하면, 흥분한 군중들이 돌을 던져서 그 여자를 죽일 것이오. 그렇다면 로마인들은 법 절차를 따르지 않고 임의로 사람을 죽이게 군중들을 선동했다는 죄로 그를 잡아갈 것이오. 어찌 되든 우리는 아무런 위험 없이 그의 힘을 뺄 수 있게 되는 것이오.”
연장자의 결정에 모두가 동의했다.
“좋습니다. 그럼 날이 밝는 대로, 저 여자를 끌고 예수가 있는 성전 뜰로 갑시다. 그곳에서 공개적인 심판을 열어, 모든 군중이 똑똑히 보게 합시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바룩은 차마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그는 마리아가 갇힌 창고 문 앞에서, 마치 망부석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녀의 흐느낌 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까, 그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함께할 수 있을까.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회의를 마친 장인은 동료들과 헤어져 돌아가려다, 여전히 창고 앞을 지키고 서 있는 바룩을 발견했다. 그는 혀를 차며, 바룩에게로 다가갔다.
“아직도 여기 있었는가.” 장인의 목소리는 지독한 고통으로 잠겨 있었다. “들었겠지. 날이 밝는 대로, 저 여자는 성전 뜰로 끌려가게 될 걸세.”
그는 바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마지막 경고를 내뱉었다.
“자네는 로마의 병사이니, 이 일에 끼어들 생각은 추호도 말게. 생각해보게. 성전 뜰은 분노한 군중으로 가득 찰 걸세. 그들 앞에서 자네가 여자를 비호한다면, 그건 ‘로마가 우리 율법을 짓밟는다’는 신호가 될 게야. 작은 소란은 걷잡을 수 없는 폭동이 되고, 로마 당국은 자네와 저 여자를 반란 주동자로 묶어 십자가에 매달아 버릴 걸세. 자네가 나서는 순간, 저 여자를 더 끔찍한 죽음으로 함께 끌고 들어가는 꼴이 되는 거라고. 알겠나?”
장인은 말을 마치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바룩은 주먹으로 창고의 돌벽을 내리쳤다. 장인의 경고는 차가운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은, 단지 그 현실적인 위협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피 속에는, 로마 군복으로도 감출 수 없는 유대인의 정체성이 흐르고 있었다. ‘간음한 자는 반드시 죽이라’는, 하늘로부터 온 지엄한 명령. 그는 출세를 위해 동족에게 등을 돌렸지만, 그 율법의 권위만큼은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외부의 위협은 그의 손발을 묶었고, 내면의 신념은 그의 영혼을 옭아맸다. 그는 완벽한 무력감 속에서, 창고 문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았다. 그렇게,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연인은 각자의 지옥 속에서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동이 트자, 예루살렘의 거리는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리아에게 그 아침 햇살은, 자신의 죽음을 재촉하는 사형 집행인의 발소리처럼 들릴 뿐이었다. 밤새 차가운 창고 바닥에서 공포에 떨었던 그녀는, 이제 짐승처럼 거칠게 끌려 나오고 있었다. 수치심에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헝클어진 머리, 흙먼지가 묻은 얇은 옷, 그리고 공포로 파랗게 질린 얼굴. 어제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우리 마리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바리새인들은 그녀를 성전 뜰, 예수가 무리에게 가르침을 베풀고 있는 곳으로 끌고 갔다. 그들의 등장은 아침의 평온을 깨뜨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그들에게로 향했다.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번져나갔다. “저 여자, 간음하다 잡혔다더군.” “쯧쯧, 꼴이 말이 아니네.” 동정과 경멸이 뒤섞인 속삭임이 비수처럼 마리아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한 발치 떨어진 곳에서, 바룩이 군중 속에 섞여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창고 문에 등을 기댄 채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장인의 경고와 자신의 신념이라는 이중의 족쇄에 묶인 그는, 결국 그녀를 구하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비극을 초래한 죄인으로서, 그녀의 마지막을 외면하지 않고 똑똑히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였다. 바리새인들은 마리아를 예수의 발 앞에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계략을 꾸몄던 연장자가,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외쳤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의 율법에는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모든 시선이 예수에게로 쏠렸다. 그의 입에서 나올 한마디에, 한 여자의 목숨과 율법의 권위, 그리고 그 자신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 마리아는 흙바닥에 엎드린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눈물을 흘리면서, 이미 스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만을 작은 목소리로 반복해서 중얼거릴 뿐이었다. “엄마, 아빠, 아네스 이모… 엄마, 아빠, 아네스 이모…” 그것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이자, 마지막 남은 세상과의 끈이었다.
예수는 그들의 고발에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몸을 굽혀, 아무 말 없이 손가락으로 땅바닥 위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침묵은, 폭풍 전의 고요처럼 광장 전체를 무겁게 짓눌렀다. 바리새인들은 초조해하며 그의 대답을 재촉했다.
“어찌할 테요, 선생! 율법을 따를 것이오, 아니면 거역할 것이오!”
마침내, 예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마리아를 둘러싼 성난 군중과,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나지막하지만, 광장의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1-6.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저 여자를 치라.”
그러고는 다시 몸을 굽혀, 아무 말 없이 땅에 글씨를 이어나갔다.
광장을 가득 메웠던 성난 고함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침묵. 자신의 심장 소리가 들릴 듯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사람들은 손에 돌을 든 채, 감히 누구도 먼저 움직이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죄가 없다고? 감히 누가 신과 저 기묘한 사내 앞에서 그리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망설임이 독처럼 공기 중에 퍼져나갔다.
바로 그 순간, 그 독을 삼킨 남자가 있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마리아를 탐했지만, 그녀에게 번번이 정중하게 거절당했던 자였다. 그녀가 로마 병사와 어울린다는 소문은 그의 모욕감을 비뚤어진 욕망으로 바꿔놓았다. ‘저 이방인의 개는 되고, 나는 안 된단 말인가?’ 예수의 말은 그의 뒤틀린 귀에,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하는 면죄부처럼 들렸다.
“나는 율법 앞에서 죄를 지은 적이 없다! 이 여자는 돌을 맞아 마땅해!”
남자의 광기 어린 외침과 함께, 그의 손에서 날카로운 돌멩이 하나가 공기를 갈랐다. 그를 따라, 가장 흥분했던 몇몇이 기다렸다는 듯이 망설임 없이 돌을 던졌다. 쉭- 쉭- 하는 소리. 그것은 사형 집행의 시작을 알리는 끔찍한 신호탄이었다.
그 광경을 본 순간, 바룩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의 머릿속을 얽매던 모든 족쇄가 산산이 부서졌다. 로마 시민권이라는 야망도, 동료들의 평판도, 율법에 대한 두려움도 모두 사라졌다. 그의 눈에는 오직 공포에 질려 눈을 질끈 감은 마리아의 얼굴과, 그녀에게로 무자비하게 날아가는 돌멩이들만 보였다. 찰나의 순간, 그는 군중을 헤치고 뛰쳐나가 쓰러져 있는 마리아의 위를 자신의 몸으로 덮었다.
‘퍽! 퍽!’ 둔탁한 충격이 등과 어깨, 그리고 뒤통수를 강타했다. 살이 찢기고 뼈를 울리는 고통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의 품 안에서 마리아의 가냘픈 흐느낌이 진동처럼 느껴졌다. 그의 뜨거운 피가 그녀의 얇은 옷 위로, 그리고 성전의 흙바닥으로 번져나갔다.바룩의 피를 본 군중의 눈에 다시 광기가 어렸다. 폭력은 피를 먹고 자라는 법. 망설이던 이들마저 피 냄새에 흥분하여 다시 돌을 치켜드는 그 순간, 예수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광장을 내리쳤다.
“오벳의 아들, 야고보!!”
처음으로 돌을 던졌던 그 사내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저 자가… 저 자가 내 이름을 어떻게…?’
예수는 땅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네 발밑을 보아라!”
야고보가 떨리는 눈으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예수가 첫 번째로 썼던 글씨. 그것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가장 선명하게 보일, 오직 그를 위한 낙인처럼 새겨져 있었다.
「너는 마리아를 볼 때마다 음욕을 품었다. 가질 수 없으니 망가뜨리려는 그 심보가 네가 말하는 율법이냐.」
예수의 시선이 이번에는 다른 여자에게로 향했다.
“요안나, 너 또한 네 발밑을 보아라!”
마리아를 향한 오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요안나의 눈에, 예수가 두 번째로 썼던 그녀만의 비밀이 박혔다.
「마리아의 얼굴에 흉터를 낸다고 네 시기심이 사라질 것 같으냐. 그 추악한 질투가 신의 이름으로 행하는 정의란 말이냐.」
예수가 아직 땅에 글씨를 쓰는 손가락을 멈추지 않은 채, 그들을 향해 나직이 물었다. 그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 담긴 위협은 방금 전의 천둥보다 더 무서웠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한가? 너희의 다른 죄들을… 내가 직접 입을 열어, 여기 모인 모든 이가 듣도록 말해주기를 바라느냐?”
야고보와 요안나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손에 쥔 돌을 떨어뜨렸다. 그들은 황급히 발로 바닥의 글씨를 문질러 지우고는, 고개도 들지 못한 채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전율했다. 저 사내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에 들린 돌이 마리아를 향한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양심을 향한 것임을 깨달았다. 돌이 하나둘씩 힘없이 흙바닥으로 떨어졌다. 곧이어 사람들은 죄책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조용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소란했던 성전 뜰에는 예수와, 피 흘리는 바룩의 품에 안긴 마리아, 그리고 아직 돌을 손에 쥔 채 서 있는 한 여자만이 남았다. 예수가 몸을 일으켜, 여전히 공포에 떨고 있는 마리아에게 나직이 물었다.
“여인아,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하던 자가 없느냐?”
마리아는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증오와 경멸의 벽이 사라지고 없었다. 텅 빈 광장.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며,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없습니다. 아무도…”
예수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예수의 용서가 텅 빈 광장에 울려 퍼지는 순간, 마리아는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바룩의 품에서 비틀거리며 일어서려 했다. 그러던 순간,
“아야!”
마리아는 갑작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어디선가 날아온 돌 한 개가 그녀의 어깨를 때렸다. 아직 가시지 않은 고통에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돌이 날아온 방향에는, 리디아가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과 증오로 범벅이 된 채, 또 다른 돌 하나를 치켜들고 있었다.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의 남편은 저 여자를 위해 피를 흘렸고, 율법의 심판은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이글거리는 복수심뿐.
마리아는 고통보다 더 큰 충격으로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저 얼굴, 저 증오. 그녀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당신이… 리디아로군요. 정말… 미안해요. 미안해요…”
마리아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반복해서 진심 어린 사죄를 했다.
리디아는 눈물 맺힌 눈으로 마리아를 한참이나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 있던 돌을 마저 던졌다. 그러나 그 돌은 마리아에게 닿지 못했다. 예수가 마리아의 앞을 막아서며, 그 돌을 자신의 몸으로 받았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리디아를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
“여인아. 네가 던진 그 돌들이 너를 구원했느냐?”
리디아가 절규하듯 대답했다.
“구원? 그런 게 저에게도 가능한 일인가요? 제 남편은 저를 버렸어요. 하지만 선생께서도 보셨다시피, 저 여자를 위해서는 목숨을 걸었습니다!”
“여인아. 모든 이는 구원받을 수 있느니라.”
예수는 자신의 가슴팍을 문지르며, 그녀의 불타는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 불타오르는 마음을 견디기 힘들다면, 나와 함께 가자꾸나.”
그의 제안에 리디아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그를, 피 흘리는 바룩을, 그리고 흐느끼는 마리아를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다. 마침내 그녀는 손에 쥔 마지막 돌멩이를 땅에 떨어뜨리고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광장을 떠났다.
예수는 피 흘리는 바룩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바룩의 상처에 손을 얹으며 나직이 말했다. “너는 아내를 배신한 죄인이다. 허나 그 죄를 씻기 위해 목숨을 걸었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 말이 끝나자, 바룩은 극심했던 통증이 가라앉고, 찢어졌던 상처들이 뚜렷한 흉터를 남긴 채 아물어가는 것을 느꼈다.
리디아는 멀리 가지 못했다. 기둥 뒤에 숨어, 혼란스러운 눈으로 광장의 끝을 지켜보았다. 예수가 피 흘리는 바룩을 치유해주고 마리아에게 용서의 말을 건넨 뒤, 그의 무리와 함께 자리를 뜨는 것을.